한예종 영화과 기자재실의 하루
우리 학교 영상원 지하 1층에 있는 영화과 기자재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영화과 학생들이 사용하는 장비를 관리하고 대여하는 일을 하는데요.
영상원 30년 역사와 함께 해 온 이곳의 하루는
오늘도 어김없이 오전 9시에 시작됩니다.


기자재실을 담당하고 계시는 선생님 두 분이 출근하시고, 사무실에 불이 켜집니다.
사무실과 이어져있는 장비 보관실도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죠.


촬영장비를 보관하는 방이 먼저 기지개를 켜고
두 선생님을 도와드리는 TA 조교님의 자리에 놓인 장비 입반출 업무용 컴퓨터도 켜지고 나면

조명 장비를 보관하는 방까지 환하게 밝아집니다.
선생님들은 어제 몇 팀이 장비 대여를 신청했는지를 체크하시고 신청 목록을 출력하시며 분주한 모습이셨습니다.
9시 20분 경.
장비 보관실 앞에 검은 스타리아 한 대가 서고
보관실의 문이 열립니다.
오늘의 첫 손님입니다.
학교 워크샵 촬영을 위해서 장비를 대여하는 팀이 도착한 건데요.


김동혁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신청한 장비의 반출이 시작됩니다.
애플박스와 C스탠드가 먼저 놓이고

뒤이어 조명을 시작으로 장비들이 하나씩 바코드 스캔을 위해 모습을 드러냅니다.


빠듯한 촬영 일정 속에서 장비 대여는 최대한 빠르게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학생들이 분주하게 장비를 꺼내오는 동안
선생님은 반출할 장비들을 확인하시고 스캔하시는데에 여념이 없으셨는데요.



반출을 도와주시며 학생들의 질문에 빠짐없이 답해주시는 선생님은
어느새 학생들과 일심동체가 되어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반출하는 장비의 스캔이 마무리되고
반출된 기자재 수량을 꼼꼼하게 점검하시는 선생님.
10시를 넘겨 장비를 가득 실은 트렁크 문이 닫히고
학생들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스타리아는 출발합니다.
스타리아는 보름 뒤에나 돌아올거예요.
그리고 오늘 아침의 일이 반복되겠죠.
순서는 반대겠지만요.
하지만 기자재 보관실의 문은 오후 6시까지 닫히지 않았어요.
그 문을 통해서 방금 출발한 팀을 시작으로 서너 팀의 사람과 장비가 오고 갈 거예요.
예술사와 전문사를 통틀어 80~100편에 달하는 단편영화가 매년 우리 학교에서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럼 우리 학교 기자재실에 있는 촬영 장비를 간단히 살펴 볼까요!
기자재실은 워크샵과 졸업작품 뿐만 아니라 수업과 과제를 위한 장비 대여도 하고 있는데요.
그러다보니 커리큘럼의 특성에 따라 대여할 수 있는 장비에 차등을 두고 있어요.
예를 들어 기초를 배우는 1학년은 캐논의 EOS 650D 카메라를 사용해요.
2, 3학년 내러티브 워크샵은 소니의 Fx3, Fx6, 그리고 Fx7로 촬영하며,
4학년 졸업작품에는 여기에 더해 파나소닉의 Eva, VARICAM까지 사용할 수 있답니다.
전문사의 경우는
RED Scarlet, Gemini, Dragon,
거기에 현재 할리우드에서도 쓰이는 Alexa Mini
까지 사용 가능하다고 하네요!
<좌: 캐논 650D, 우: ARRI 알렉사 미니>
그 덕분에 가능한 투 샷!
렌즈도 마찬가지인데요.
컨슈머 DSLR에 쓰이는 캐논 줌렌즈부터 알렉사 미니와 같이 쓰는 앙제뉴 렌즈까지
폭넓은 라인업을 갖추고 있어요.
새내기의 촬영 입문 수업부터
상업 영화 레벨의 작업까지
모두 커버할 수 있도록
보유하고 있는 장비의 범위가 매우 넓은 것이
우리 학교 기자재실의 특징이랍니다.
사설 렌탈 샵과 달리
학교 커리큘럼을 위해서라면
무료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매우 큰 장점이죠!
다만
사설 렌탈샵과 달리
기자재의 교체 주기가 빠르지 않다보니
한번 들인 장비를 오래 사용할 수 있게끔 하는게
아주 중요한데요...!
여기에 큰 역할을 하고 계신 분들께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아까 기자재실은 두 선생님께서 맡고 계신다고 했었죠.
최인수 선생님, 그리고 아까도 뵌 김동혁 선생님은
영상원 개원 초창기부터 이 자리를 지켜오고 계시는
우리 학교 역사의 산 증인이시기도 합니다.
2000년부터 영화과 기자재실을 지켜오신 김동혁 선생님.
Q1. 기자재실 업무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저는 방송 업계에서 일하다가
2000년부터 지인의 소개로 일하게 되었어요.
우리 학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AVID 편집기를 도입한 곳 중 하나였는데,
신기술에 대한 관심이 저를 여기로 이끌어주었지요.
"
Q2. 영화 제작이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과정을 지켜보셨을 텐데요.
오랫동안 기자재실을 담당하시며 인상적인 사건이 있으셨나요?
"
아직 필름으로 촬영하던 무렵의 이야기인데요.
필름으로 촬영한 후에는 그것을 디지털화하는 과정이 있어요.
그런데 한 학생이 작업하다가 하드가 손상되어 파일이 다 날아간 거예요.
제출 기한 1주일 전에 말이죠.
결국 촬영을 다시 하게 됐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도와줄 수 밖에 없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작품은 완성되어 영화제에도 제출됐고, 수상도 하게 되었답니다.
"
이야기를 듣다가 그 학생 분은 지금 뭐하고 계신지 문득 궁금해지더라구요.
그래서 혹시 학생 분 성함이 기억나시는지 여쭤봤어요.
'그... <안다고 말하지 마라> 찍은 학생이 누구지?'
선생님이 말씀하시기가 무섭게
'송혜진 감독님이요!' 라고 옆에 계시던 이재환 TA 조교님이 말씀하셨답니다.
'그 영화 죽여요.'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덧붙이시면서요.
안다고 말하지 마라 — 서울독립영화제
이야기 속의 그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작품이 바로 <안다고 말하지 마라>라고 하시네요!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송혜진 감독님이 보여주신 열정과 끈기를 선생님은 여전히 기억하고 계셨답니다.
오래도록 두 선생님이 지켜오신 기자재실에 3년 전 새로운 자리가 생겼는데요.
바로 TA (Technical Assistant) 조교입니다.
올해부터는 이재환 조교님이 이 자리에서 일하시고 계십니다. 우리 학교 전문사 촬영전공 1학년이시기도 해요.
흔쾌히 시간을 내주셔서 말씀을 들어볼 수 있었는데요.
인터뷰 도중에도 학생들의 장비 고장, 대여 관련 문의가 끊이지 않았답니다.
Q1. TA 조교로 일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저는 다른 학교에서 영화 학부를 졸업하고
현장에서 일을 하며 촬영으로 개인 사업도 병행했는데요.
작년 가을 촬영을 담당한 영화가 크랭크업 한 뒤
올해부터 우리 학교 전문사에서 촬영 전공으로 공부하게 되었어요.
전문사는 개강하기 전에 초급 워크샵을 찍는데요.
사업자를 정리하고 학업에 전념하며
학교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학부 때도 기자재 관리 업무를 한 경험이 있어
TA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
Q2. 이미 기자재실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하셨어요.
학교 기자재실과 사설 렌탈샵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
렌탈샵은
일반인과 학생이 주 고객인 컨슈머 렌탈샵,
상업 영화 제작진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 렌탈샵으로 나뉘는데요.
컨슈머 렌탈샵은 접근장벽이 낮아요.
24시간 운영하는 곳도 있죠.
장비 수량도 많고 가격도 저렴해요.
반면 상업 렌탈샵은 9 to 6로 운영돼요.
장비보험이 적용되고, 신뢰가 쌓인 단골 고객 위주로 영업하죠.
장비와 사용자 모두 한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학교 기자재실과 비슷해요.
"
"
영화 촬영에 있어서 장비는 기본 중의 기본이에요.
장비에 문제가 생기면 촬영에 엄청난 손해가 발생하거든요.
그게 상업 렌탈샵이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될 수 있는 이유예요.
학교 기자재실도 그렇게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Q3. 기자재실에서 일하면서 힘든 점이 있으신가요?
"
특별한 일이 없다면 여기에 있는 장비들은
최소한 10년은 더 사용해야 할 거예요.
이들을 최대한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영화과 커리큘럼이 '잘 굴러가도록' 하는 게
기자재실의 임무입니다.
기자재엔 제각각 수명이 있어요.
시간이 지날 수록 낡아가고 결국 고장이 나죠.
힘든 점은 딱히 없지만
나이를 먹고 점차 병들어 가는 장비들을 보면
묘한 느낌이 들어요.
"
기자재실에 있는 장비 하나하나는
졸업생과 재학생, 그리고 앞으로 입학할 학우분들이
사용했고, 사용하고 있으며, 사용할
소중한 공동 자산이죠.
무심결에 스쳐 지나가는 소비자의 태도로 장비를 대하지는 않았는지,
조교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영화과 학생인 저 자신 역시 되돌아보게 되었답니다.
선생님과 조교님은 기자재실의 임무에 대해
'잘 굴러가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계속 강조하셨어요.
이를 위해 장비의 간단한 분해와 재조립를 직접 하시기도 한다고 해요.
D.I.Y를 몸소 실천하고 계시는 모습이셨습니다.
말씀을 나누다가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있었는데요.
아까 김동혁 선생님이 열심히 하고 계시던 바코드 스캔, 기억하시죠?
우리 학교 기자재실은 입반출 관리를 위해 장비에 바코드를 부착하고 있어요.
바코드를 스캔하면
장비 입반출 업무용 컴퓨터의 데이터베이스가 업데이트되는 시스템이랍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
실은 아주 예전에 기자재실에 계셨던 분이 직접 만드신 것이라고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엑세스'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구축하셨다고 해요.
보이시나요?
취득일자 1996년 3월 25일...!
영상원과 역사를 함께 한 입반출 시스템인데요.
30여 년 전 영상원이 갓 생겼을 때 한 분이 쏟으신 노력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기자재실을 넘어서 영화과 전체가 '잘 굴러가게끔' 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었어요.
취재를 마무리하며 이재환 조교님께 마지막 질문을 드렸어요.
"기자재실을 한 단어로 정의하면 무엇이 될까요?"
⌜ '자동차 엔진' 아닐까요.
매일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는 곳이지만
여기가 잘 돌아가야 현장도 돌아가니까요.
엔진이 계속 펌핑하며 연료를 연소시키듯
기자재실도 계속 돌아가고 있어요.
그리고 기자재실을 움직이게 하는 연료는
열정이 넘치는 학생들이겠죠. ⌟
예종지기 심성환
바쁘신 가운데 취재에 협조해주신 영화과 기자재실 선생님들과 조교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