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문제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다가 진심이 되어버렸을 때 발생한다. 첫발을 뗄 때만 해도 연극 연출을 업으로 삼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선택의 기로에서 기준은 언제나 ‘재미’였다. 아마추어리즘에 따라 본인의 재미와 행복을 위해 연극을 지속해왔다.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등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자전적인 이야기는 물론 동시대에 던지는 명확한 질문이 담긴 작품들로 어느덧 대한민국 현대 연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연출 반열에 닿았다. 극작가로, 연출가로, 극단 대표로, 그리고 교육자로서 주어진 시간을 진심으로 감각하고 있는 김재엽 교수를 만났다.

즐거운 연극, 지속가능한 연극
제가 대학에 다닐 때는 학생 운동에 명분이 있는 시대였고, 학생 때밖에 못하니까 학생운동을 해야만 할 것 같았어요. 문화적인 활동이 학생운동에서 대안이 될 수 있는 시대적 변화 덕에 자연스럽게 연극을 했고요. 국문과 극회에서 활동했는데 중앙동아리에 비하면 전문성은 떨어졌어요. 조명 하나를 극장에 다는 것도 품이 많이 드니까 다른 방법을 찾았죠. 형광등 켜는 걸 지문으로 써서 강의실에서 공연하거나 학생회관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희곡으로 쓴다거나 하는 식으로 거꾸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해내는 걸 즐거움으로 삼았어요. 완성도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 15분짜리 길거리 극을 써서 우리끼리 놀아보자 그런 모토였어요.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하니까 매일매일 할 수도 있고, 매주 할 수도 있고, 그렇게 지속하는 게 가능했어요.
극작가 김재엽의 글쓰기
대본을 바로 희곡 형식으로 쓰지 않아요. 갑자기 인용이 들어가기도 하고, 공상과학 만화 같은 이상한 말도 쓰고. 브레인스토밍처럼 에세이를 쓰고 나면 그때서야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게 돼요. 그 후에 이야기에 어울리는 형식을 찾아요. 연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하나의 매체인데, 매체 형식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관객들이 굳이 극장까지 와서 연극을 볼 필요가 없잖아요. 메시지 자체가 하나의 형식이기 때문에, ‘미디어로서 연극의 새로운 형식은 뭘까?’ 이 고민이 그 작업의 내용에서 나와야 해요. 그래서 글 쓰는 형식 자체에서 새롭게 널브러진다고 해야 할까, 그런 헝클어진 글쓰기를 해요. 실험적인 형식을 의도했다기보다는 이 작품에만 맞는 형식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걸 발견해야 새롭고 재밌는 연극이 되는 것 같고요.
등장인물 ‘김재엽’의 탄생
용산 참사와 관련된 연극 ‹여기 사람이 있다›를 올렸을 때 철거민 당사자분들이 보러 오셨어요. 공연 후에 응원도 해주시고 술도 사주시고 그랬는데 그 격려가 너무 부끄러웠어요. 작품은 20년 뒤에도 여전히 다음 세대들이 그 동네에서 암울하게 살고 있다는 디스토피아적 이야기인데, 당시 같이 싸웠던 분들은 감옥에 있었거든요. 현실에서는 해결이 안 된 문제를 소재로 삼고 미래 이야기를 한 거잖아요. 그때부터 세상 이야기를 하더라도 내가 겪은 것만 이야기하자 해서 ‘나’라는 인물을 넣기 시작했어요. 무던한 정원조 배우가 재엽을 자주 연기하는데 저를 재현하는 건 아니에요. 배우 스스로 자기 서사에 입각한 자기의 모습과 태도 안에서 연기로 접근해요. 저는 대본에 나와 있는 이상으로 제 개인사를 이야기하지 않고요.

‹알리바이 연대기› ©국립극단
쫑파티 의식
처음 연극 시작했을 때 뭐라도 사례해야 할 것 같아서 책을 사고 편지 쓰고 문화상품권 같은 걸 넣어서 쫑파티 때 모두에게 드렸어요. 공연은 사라지니까, 대단한 건 아니지만 남을 만한 선물을 하는 거예요. 그게 의식처럼 됐어요. 재미예요. 동료들 개개인에게 어울릴 책을 선정하려고 사람들을 관찰하는 편인 것 같긴 해요. 지난 번 ‹알리바이 연대기› 공연 때 정원조 배우를 계속 따라가는 스포트라이트 오퍼레이터가 있는 극장 옥상에 올라가 본 적이 있어요. 제가 모르는 분들의 작업 공간, 그 분위기가 궁금했거든요. 오래 같이 작업한 동료들은 저한테 받은 책만으로 서가 한쪽이 가득 찼다고 해요. 쫑파티 때마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책을 찾는 일이 피곤해서 그만할까 했는데 이번에는 무슨 책을 줄 거냐고 기대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계속 하고 있어요.
연출가, 커뮤니케이션을 창조하는 사람
연습할 때는 오퍼레이터가 막내들이 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공연에서는 자리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어요. 배우는 물론이고 모든 스태프는 극장에 자기 자리가 있어요. 연출은 객석 한 자리를 차지하는 관객 중 한 명일뿐이에요. 다만 아티스트들이 각자 자기 자리가 있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힘든데 연출가는 그 소통을 창조하는 직업이라고 믿어요. ‘극작’과 ‘연출’을 같이 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어요. 아마추어 활동할 때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었고, 연출 역시 연극 안에 있는 다양한 것 중 하나였으니까요. 희곡은 관객을 만나야만 완성이 되거든요. 그 과정까지 내가 경험을 해보면 내 글의 의미를 조금 더 알 수 있어요. 지금도 글 쓰는 친구, 배우 하는 친구들한테 연출해보라고 해요. 관객의 눈으로 보면 내가 글을 쓰거나 무대에 설 때 도움이 되거든요.
사라지는 연출가
글 쓰는 것은 관념이고 연습실에서는 관념을 감각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요. 아티스트들의 반응, 디자이너들의 첫 영감이 직접적으로 관객과 만나기 때문에 저는 그걸 대본보다 더 열심히 봐요. 배우들이 연습하다가 자기 이야기나 느낀 것을 이야기하고 질문하고 수다 떠느라 여념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다 텍스트에 젖어들었다고 판단하죠. 그러면 공연은 잘돼요. 연출이 애쓴다고 몇 평 되지도 않는 무대에서 엄청난 블로킹(배우의 동선)이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연습이 재밌어서 오고 싶게 만들면 나머지는 알아서 진행돼요. 연출이 자꾸 모든 걸 본인이 주관하려고 하면 안 되고 사라지는 쪽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남산예술센터, 이강물
마지막 세리모니를 위하여
저한테 작품을 의뢰할 때는 대부분 대본을 줄여달라는 부탁인데요, 작가가 오래 고민해서 쓴 문장들을 우리가 두어 번 읽고 나서 ‘아, 길어.’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글을 존중해야 해요. 모든 문장은 쓴 이유가 있으니까요. 자꾸 줄이려고 하지 말고 관객들에게 “이 정도 규모입니다. 인내하셔야 해요.” 미리 이야기를 하자고 해요. “또 사고 쳤다. 200분 나온다더라”, “작품 길다.” 그런 이야기 많이 듣는데, 초연은 그래야 해요. 외국은 4시간짜리 공연도 많잖아요. 인내하는 호흡을 가져야 커튼콜에 임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고 믿어요. 이걸 다 본 나 자신이 너무 대단하다, 보는 내가 이렇게 힘들었는데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면서 ‘이제 우리는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런 감각을 공유하는 게 연극에 있는 마지막 세리모니 같아요. 한 시간 반 호흡에 익숙해지는 것이 과연 연극적인 체험이 될까요? 물론 그렇게 한 번 하고 나니까 의뢰가 잘 안 들어옵니다. (웃음)
교육자로서의 목표,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누구나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됐기 때문에 그 사람이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교육 목표예요. 학생들이 미학적인 것을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자기를 돌보지 않아요. 자기를 아끼고 애정을 가지면서 내 속에 억압된 과거를 재발견해야 현재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더불어 미래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알게 돼요. 수업에 와서 수다를 떨고 자기 이야기를 하라고 해요. 내 억압을 고백하고 객관화시키면 타인의 억압에 공감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여기 한예종 학생들은 다 어릴 때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던 친구들이거든요. 남들보다 잘하니까 이 일이 재미있고 즐거웠는데 하다 보면 나만큼 하는 친구들이 보이고 재미가 없어져요. 결국 이 일을 계속 하려면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재밌고 좋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 지점을 자꾸 발견해야 해요. 누구보다 뛰어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재미를 놓치지 말고, 재미있어하는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야 해요.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을
레퍼토리 공연 ‹모모(momo)›를 준비 중이에요. 코로나로 인한 규제와 제한된 조건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능동적으로 찾아서 하고 있어요. 학생들이 커뮤니티 작업으로서 연극을 먼저 경험하게 하고 싶어요. 커뮤니티에 대한 관심 없이 프로덕션을 굴러가게 하고 내 롤의 경쟁력을 키우는 쪽으로 가는 건 기성 연극에 편승하는 방식이거든요. 동시대 연극을 하려면 변화가 필요해요. 공동체를 만들어보고 테마를 같이 사유하고 리서치하고 그 결과로 연극을 해보자, 순서가 그렇게 되어야 해요. 거리를 둬야 하고 관계 맺는 걸 피해야 하는 코로나 시대지만 연극은 더 절실하게 만나야 해요.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을 얻어야 하거든요. 내 것을 어떻게든 구현해낼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백지상태로 와서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 여기서 디자인을 해보자, 상대 배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리액션을 찾아보자, 그런 네트워킹에 중점을 둔 연습을 하고 있어요.

‹배수의 고도› ©두산아트센터
연극인 김재엽의 지향점
개인주의자로서 자기 삶을 이끌어가는 이들이 모인 공동체가 필요해요. 공동체 감각이 자꾸 사라지고 있잖아요. 우리는 디지털 세계 속에서 엄청나게 교류하고 있고 서로에게 모든 것이 전달된다고 생각하는데 착각이거든요. 여행 가서 느끼려 하지 않고 사진 찍고 디지털 정보를 올리면서 경험을 대체하고. 거대한 관념이 자신의 경험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취득한 정보만이 진실이고 남들에게 어떻게 감각적으로 느껴질까 하는 문제에 무감각해질 수 있어요. 커뮤니티 속에서 관념이 아닌 감각으로 느껴지는 커뮤니케이션을 계속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것이 저에게 가장 중요한 태도나 목표이고 그런 작업을 하려고 해요. 그게 연극을 하는 이유이자 예술, 특히 연극이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소설부터 전공서적, 시집, 만화책까지 정갈하게 정리된 그의 교수실 서가처럼 그는 시종일관 깔끔하게 정리된 언어를 사용해 생각을 공유했다. 인터뷰 중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재미’, 그리고 ‘자연스럽게’였다. 꾸밈없이 자연스러운 말로 이루어진, 시간 가는 게 아까울 정도로 재미있는 대화였다. 공동체에서 함께 감각하고 사유할 수 있는 근육을 만들어주는 것. 그의 작업에서 읽어낼 수 있는 주제의식 만큼이나 명확한 교육 목표 덕분에 그가 뿌리는 씨앗에서 맺힐 열매가 기대되었다. 준비도 없이 맞은 비처럼 그의 언어에 푹 젖어든 탓에 진심으로 수업을 청강하고 싶어지는 문제적인 인터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