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선애 감독의 영화 ‹69세›는 아무도 가지 않는 해변에서 주운 작은 알의 언어를 일렁이는 마음으로 해독한다.1 여성이자 노인으로서 겪는 여러 겹으로 겹쳐진 차별을 담담하고 천천히 꺼내어 보이는 영화 ‹69세›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KNN 관객상, 제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박남옥상을 수상했으며, 임선애 감독은 지난 10월 한국여성지도자상 젊은지도자상을 수상했다. 2013년 칼럼에서 노인 여성의 성폭력 문제를 접한 뒤 이를 오랜 기간 쓰고 찍고 또 다듬으며 영화를 만들어내기까지 그의 고민과 생각들을 들어보았다.

스토리보드 작가에서 영화감독까지
학부 시절에 무턱대고 휴학을 하고 영화 현장에서 일하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영화 연출에 대해서 꿈을 키웠던 것 같아요. 당시 현장에 뛰어들었던 작품이 ‹오버 더 레인보우›라는 멜로 영화였는데 제가 미대생이니까 감독님이 콘티를 그려보라고 하셔서 그때 처음으로 스토리보드를 그려봤어요. 그때는 스토리보드라는 개념도 잘 몰랐고 그게 영화 현장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몰랐었어요.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린다는 이유로 일을 시작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이 과정이 감독이 최초로 연출을 고민할 때 가장 가까이 붙어있는 일이더라고요. 그 경험이 분명 제가 연출하는 작품에 대한 자양분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주변에서 제 영화가 버릴 컷이 없을 만큼 정돈이 잘 되었다고 좋게 말씀을 해주시는데, 그런 영화를 제가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스토리보드 작업자로서 편집 콘티를 그리다 보니까 철저한 계산을 해서 찍는 편이어서 이전 경험들이 자양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사각지대에 있는 노인 여성의 성폭력에 닿다
가해자들이 노인 여성을 타겟으로 삼는 이유가 충격적이더라고요. 신고하지 않을 거라는 이유, 유약해서 도주가 어려우니까 힘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이유인 거죠. 처음에는 60대 여성의 이야기가 저와는 멀리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직은 60대가 아닌데 내가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가만가만 생각을 해보면 이 이야기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고, 저도 예비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의 이야기구나,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자신감을 가졌어요. 그런 과정 속에서 시나리오 쓰면서 조금씩 생각의 확장이 일어났던 것 같아요. 노인, 노인인데도 여성, 또 때로는 그것을 분리해서 보려는 이중 잣대의 시선들이 분명 있기 때문에 그게 계속해서 피해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을 해서 결국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거잖아요. 그러한 문제를 보여줄 때 젠더, 나이, 세대로 선명하게 나눠서 시나리오를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자신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누구나 타인을 평가하기도 하고 실수와 오류를 범할 수 있잖아요. 그런 부분들을 전방위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최대한 일상의 현실처럼 다양한 것들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이 “혹시 나도 저러지 않았을까?”라고 이 영화를 통해서 한 번쯤 자각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저도 이 영화를 쓰면서 스스로 각성이 많이 일어났거든요. 그런 지점에서 저의 죄책감과 각성의 일련의 과정이 시나리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영화 ‹69세›, 현실의 땅을 딛다
평소에 개인적으로 완벽한 선의와 악의를 가진 사람은 없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에요. 이중호라는 인물을 그릴 때 본질적으로 그는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대단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든가, 변태성을 가지고 있다든가, 아니면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카테고리를 만들지 않으려고 했어요. 이 영화 자체가 관객들에게 타자화 돼서 영화에서만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로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영화 속에 동인이라는 인물도 표면적으로는 효정을 도와주려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효정을 배려하지 않고 효정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본인이 한발 앞서서 행동하는 것들에 효정이 상처를 받고 폭력적인 상황들에 놓여요. 그렇지만 동인이 이중호하고 다른 지점은 그것을 깨우친다는 거죠. 본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우치고 사과를 금방 한다는 것이에요. 그 지점이 저는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피해자를 보여주는 이미지들도 피해자 자체가 캐릭터가 되지 않았으면 했어요. 69세 효정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살아왔을 것 같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 인물이라는 게 아주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은근하게 드러내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당연히 피해를 당한 사실은 고통스럽고 힘든 부분이지만 그것만 가지고 효정을 드러내진 않았어요. 관객이 효정을 바라볼 때 하나의 정답으로만 그를 평가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앵글도 효정의 뒷모습을 자주 보여줬어요. 그녀의 등으로 그 느낌을 함께 전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너무나 극단적으로 보이면 보일수록 영화가 현실의 땅을 딛고 있는 영화처럼 보이지 않을까봐 굉장히 담담하게, 일상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인물들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해왔어요. 저의 이런 생각들이 모여서 그런 피해 상황에서도 담담하게 그것들을 정리해가는 인물들로 그리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럼에도, 자신의 존엄을 찾는 이들
결국에 효정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깨우치고 자신의 색을 드러내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 아닐까 생각해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결국엔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인물이죠. 제가 다음으로 쓰고 있는 시나리오도 소재나 이야기는 전혀 다른데 나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시나리오를 쓰다보면 자기 존재에 대해 자신도, 주변으로도 그 존재를 인정하는 자기 존엄에 대한 것에 관심이 가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색깔을 결국엔 드러내려고 하는 거죠. 그것을 인정받으려고 아등바등하진 않지만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고 어떤 억압이나 억눌린 시선에서 벗어나서 되게 자유로워하는 인물인 것 같아요. 제 영화의 인물들은 자기 존재가치에 대한 존엄을 깨닫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69세› ©엣나인필름
정제된 이미지와 이야기들
‹69세›를 찍을 때 저희가 나름대로 내세운 기준이 있었어요. 관습적인 인서트 컷을 배제하자. 관습적인 컷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긴 하잖아요. 그러면 없애자. 관객들이 영화를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보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실 역설적으로 성폭력 장면에서 화면을 보여주지 않는 것도 관객들이 처음부터 피해자와 가해자를 확 구분 짓고 보진 않았으면 해서였어요. 처음부터 효정에게 동정 어린 시선으로만 보면 영화의 엔딩은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뻔한 결말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면 영화를 보는 재미도 없을 것 같아서 구조 자체도 미스테리한 구조로 설정했고, 보여주는 방식도 관객이 모든 걸 바로바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대신 두 단계 정도 지난 이후에 뭔가를 수거하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연출을 하는 방식에서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고, 많이 생략하기도 했고요.
여성 영화인들과의 연대
현장에 여성 스텝들이 많이 있었어요. 결혼하신 분들도 있고, 싱글이신 분들도 있고요. 그중에 저만 결혼도 하고, 출산도 했었는데 아이를 출산하고서도 현장에서 일하는 경우는 1~2%도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현장에 버티고 있는 누군가가 있으면, 그 존재만으로도 용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여성이 양적으로 많아지는 것이 익숙하고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저처럼 내가 영화를 할 수 있을까? 괜히 민폐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거든요. 지금 아직 데뷔하지 않은 후배 감독님들이 더 나왔으면 좋겠어요. 양적으로 일단 비등해지면 좀 더 공정하게 경쟁하고, 서로 자극받으면서 작업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후배 창작자들에게 전하는 말
‹69세› 쓰면서 노인이 주인공이고, 소재도 성폭력이어서 다들 걱정이 많았어요. 누가 투자를 하겠냐, 조력자로 젊은 사람을 배치해야 하지 않냐. 이런 조언들이 있었는데, 그때 제가 귀가 얇아져서 하나하나 다 맞춰갔으면 전혀 다른 영화가 나왔을 것 같아요. 아니면 만들지도 못했을 수도 있고요. 그때 우려 섞인 목소리를 알고는 있었지만 자꾸만 손에 어루만져지는 이야기들이 있더라고요. 후배 창작자분들도 작업을 할 때 여러 가지 평가를 받잖아요. 그렇지만 그것을 잘 아는 사람은 창작자 본인인 것 같거든요. 빨리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본인이 작품에 공들인 시간을 스스로 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자신이 하려는 작품을 폄하하지 않고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를 믿고 작업했으면 좋겠어요. 이후의 평가가 어떻든 간에 작품이 세상에 나온 순간 자체가 저는 성공한 것이라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본인 스스로도 세상에 오롯이 존재하는 한 사람이고, 그것은 그 사람이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그 지점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주변 이야기에 흔들리지 말라는 얘기죠.
타인이라는 바다를 대할 때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 상처를 줬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사과를 할 수 있는지, 우리가 서로를 돌보면서 상처 주지 않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임선애 감독은 그러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엄을 드러내고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한다. 동시에 그 사이에서 가시화되지 않은 영역들을 담담하고 천천히 꺼낸다. 그 일렁이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올라가는 영화, ‹69세›의 봄볕 시구가 떠오른다.
“줄에 걸린 해진 양말 한 짝, 봄볕에 눈물도 찬란하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