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30 이리카페
2020. 11. 06 Zoom

서연재 Host
국범근 영상원 방송영상과
김영비 음악원 음악학과
김정엽 무용원 예술경영과
백설이 연극원 극작과 서사창작 전공
이린 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과
최서윤 미술원 조형예술과

올해 초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로 사회 전반에 큰 파문이 일었다. 여행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되었고 마스크 없이는 외출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예술계도 타격이 컸다. 공연은 줄줄이 취소되었고, 미술관이 다시 문을 열 때까지 전시는 끝없이 미뤄졌다. 그 어느 때보다도 변화무쌍한 한 해를 보내며 우리 학교에는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 6개원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1학기에는 개강이 한 달 가까이 미뤄졌었고, 이번 학기는 계속 거리 두기 단계에 변동이 있어 우여곡절이 많았죠. 한 해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돌아보니 이런 변화들은 어땠던 것 같은가요?
최서윤 집이 청주에 있어서 줌(Zoom) 수업이 오히려 저에게는 장점이 됐어요.
국범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수업을 하니까 딴짓하기가 쉬워요. 게임을 한다든가. 학생들이 얼마나 능동적으로 참여하느냐가 대면 수업에 비해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김정엽 전문사 과정에 있다 보니 저녁, 오후 수업이 많아요. 직장에 다니며 학업을 병행하는데 퇴근하고 부랴부랴 뛰다시피 학교에 가야 했죠. 비대면 수업이 되니 퇴근하고도 여유롭게 수업을 들을 수 있어요. 아쉬운 건 함께 수업을 듣는 학우들과의 교류가 어렵다는 거예요.
김영비 너무 공감돼요. 코로나가 없었을 때는 수업에서 만나서 친해진 친구들이 있었어요. 코로나 이후로는 그런 교류가 전혀 없어요. 음악원 공연기획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공연도 확실히 줄었어요. 작년에 비하면 3분의 1 정도로요. 실기과 친구들은 우리 학교에 진학하는 목적이 거의 연주나 앙상블인데, 학교에서도 지원을 해 주고요. 그런데 단체 레슨이나 관현악 오케스트라도 할 수 없고, 합창지휘 전공은 말 그대로 합창을 지휘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못 하고, 거의 일대일 개인 레슨만 받거나 심할 때는 그것도 못 받으니까 음악원 친구들이 휴학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저는 이론과니까 직접적으로 상관은 없지만 그런 걸 보면 안타깝기는 하죠. 공연예술 쪽이 많이 타격을 입었잖아요.

비대면으로 전환된 것은 저희 수업만이 아니라 예술계 전반이 마찬가지였죠. 온라인으로 전시를 하거나 OTT 서비스로 영화를 개봉한다거나 하는 사례들이 있었어요. 여러분께도 이와 관련한 일화가 있나요?
백설이 이런 것들이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다양한 정보들이 많아지면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인프라를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데 도움이 돼요.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유료 후원 후에 라이브를 감상할 수 있게 하는 형태로 진행됐고, 서울국제도서전, 아시아북페스티벌, 와우북페스티벌이 다 온라인으로 진행이 됐거든요. 그게 신선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엄청 좋았어요. (오프라인으로 하면) 그 장소에 다 갈 수 없으니까요. 코로나 상황이 엄청 중요한 전환점이나 분기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팟캐스트나 웹진 같은 언택트 활동들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 같고요. 예전에는 출판사를 통했다면 이제는 작가들이 인터넷을 통해 독자와 직접 만나는 거예요. 코로나가 아니어도 시기적으로 그랬겠지만, 등단과 비등단, 소위 말하는 순수예술과 대중예술 같은 어떤 경계들이 이 상황과 더불어 많이 흐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정엽 좀 더 학교 내부의 이야기를 해 보자면, 수업의 질이 높아졌다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어떤 확장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해요. 예술경영은 대중과 예술을 매개하는 거니까요. 설이님이 말씀하신 온라인에서의 예술계 흐름을 수업에 끌어들여 다양하게 경험해 볼 수 있었어요.
김영비 저는 확장이라고는 생각을 안 하는 게, 지구온난화 때문에 환경 문제가 심각해져서 인류가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걸 인식 확장이라고는 하지 않잖아요.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일 뿐이죠. 코로나에 대한 온라인 보편화도 그런 것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코로나로 인해 많은 새로운 논의들이 이루어졌지만, 공연예술은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야 중 하나인데도 그런 고민이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오프라인 공연의 관중이 온라인에서는 유튜브 댓글로 바뀐 정도의 변화만 있는 듯해서 아쉬워요.
최서윤 아무래도 좋은 전시가 한국에서는 국공립 미술관에서 많이 열리는 추세예요. 그런데 정부 지침이 내려오면 제일 먼저 닫는 곳이 국립현대미술관이거든요. 전시가 미뤄지거나, 온라인으로 바꾸면서 기간이 축소되거나 했죠. 조형예술을 전공하다가 심도 있게 공부하고 싶어 미술이론을 부전공하게 됐는데, 자꾸 돌아보게 돼요. 왜 조형예술과에서는 좋은 작가가 되는 법만 알려 줬지? 왜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은 안 가르쳐 줬을까?
국범근 집에서 영화 보는 시간이 늘어나서 평소 같으면 미루며 보지 않았을 고전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짧게 하는 과제들은 많이 했어도 긴 호흡의 뭔가를 만드는 건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제 밖에 나갈 일이 없으니까 긴 호흡의 뭔가를 할 수 있더라고요. 장편 소설 완성하기 같은 거요. 나름 저는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이린 저도 발버둥을 치는 것 같은데요. 최대한 집에서 할 수 있는 것 중 신선하고 재미있는 걸 찾아서 하고 있어요. 메일링 서비스를 구독하기도 하고요, 비평이든, 소설이든.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려는 마음가짐이 생겼어요. 공간이나 건축의 브랜딩에 관심이 있는데, 코로나 이전에 다녔던 공간에 대해 1인 매거진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이론과라서 작업이라고 할 건 없지만 대신 전통예술원에는 위클리 실기 실습이라는 게 있어요. 다 같이 모여서 한 분씩 연주하는 걸 듣는 거예요. 다 끝난 이후에는 교수님이 크리틱을 해요.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까 영상을 보내서 피드백을 받는 형태로 바뀌고, 예술학과는 빠졌어요. 속상한 부분이죠. 이론을 공부하는 학과 입장에서는 연주를 직접 듣는 것도 중요한데.

올해가 가기 전에 해 보고 싶은 일들이 있으세요? 연초에는 올해의 버킷리스트 같은 걸 만들기도 하잖아요. 혹시 그런 리스트를 만들어 두셨다면, 그 리스트에서 얼마나 이루셨어요?
김정엽 올해는 뭘 하지 않기가 목표였어요. 근데 코로나 때문에 진짜 뭘 하지 않게 됐죠. 제 힘으로 출판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이번 한 달 동안 연습을 하려고 예술교양학부에서 진행한 독후감 대회도 응모했어요. 올해 달성은 무리겠지만 내년에라도 꼭 하고 싶네요.
백설이 휴학을 오래 하고 복학하면서 책 많이 읽고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다른 걸 할 수 없으니까 그건 잘 이룬 것 같아요. 올해가 가기 전에는 녹음실을 빌려서 팟캐스트를 해 보고 싶어요.
김영비 이번 연도에는 전공 빼고 다 열심히 했어요. 지금도 모든 게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고, 앞으로 더 빠르게 변할 텐데, 18, 19세기 유럽 남자 작곡가들을 공부하는 게 말이 되는가 싶은 거예요. 지금은 영상을 배우고 있어요. 공연기획실에서 라이브 송출을 계속하고 있고, 스코어 리딩이라고 악보 보면서 자막 타이밍 같은 걸 알려 주는 스태프를 했었는데, 옆에서 보면서 이제 다 융합이 되니까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국범근 코로나 이후에 목표를 새로 세웠어요. 장편이든 뭐든 소설을 써서 책을 내자. 가능하다면 문학제, 문학상도 노려보자. 단편 영화를 연출해서 영화제에서, 조촐한 영화제라도 좋으니 상을 받아 보자. 스페인어 능력 시험도 좀 봐야겠다. 지금은 또 마음이 콩밭에 가서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어요. 소설 쓰는 것과 단편 영화는 진행 중입니다. 2020년은 그 두 가지를 끝내는 게 목표예요. 올해를 조금 넘기더라도 내년 2, 3월까지는 마무리되지 않을까요?
최서윤 저는 원래 벨기에에 교환학생으로 갔다가 코로나 때문에 귀국한 케이스예요.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이게 오히려 미칠 것 같더라고요. 청주에는 친구가 별로 없고 서울에서 만난 친구들이 많은데 친구들도 못 만나고, 친구들이 곁에 없는 상태로 자꾸 자신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 저를 두게 되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복학하고, 무기력함에서 탈피하는 게 제1 목표였어요. 조형예술과는 작업물로 평가를 많이 하지만 미술이론과는 살짝 달라요. 초록을 먼저 쓰고 발전시키는 식으로 과정이 분명해요. 작업은 갑작스러운 영감으로 나올 때도 있고, 논리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도 있지만, 과정 자체가 힘들고 그게 힘들어서 못 하면 자존감이 낮아지거든요. 미술이론은 그래도 우선 내가 갖고 있는 연구 주제가 있으니까, 그걸 잘 연구해서 잘 끝내고 싶어요.
이린 1월 첫째 주에 크리스마스엔 꼭 뉴욕에 가자는 목표를 세우고 둘째 주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셋째 주에 코로나가 터졌어요.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8월까지 했는데 손님도 없고 해서 심심할 때마다 한 줄씩 스토리나 시나리오를 썼어요. 그걸 토대로 틱톡(TikTok) 산학 협력 프로젝트에서 카페를 배경으로 한 영상을 찍게 됐어요. 의도치 않게 벌어진 사건들에서 새로운 계획이 생긴 거죠. 그것도 하나의 스토리가 되어서 재미있어요.

내년에는 어떻게 될까요. 기대나 예측하는 바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김정엽 제가 아니라 다른 분의 말이지만, 온라인을 두려워하는 건 관객이 아니라 예술가예요. 관객은 이미 넷플릭스 같은 서비스를 통해서 작품을 감상하는 데 익숙해요. 영상 매체를 활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오프라인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은 지금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죠. 고민이 필요한 시기 같아요. 저처럼 매개하는 입장에서도 고민해야 하지만, 예술가들도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코로나 시대의 공연예술, 대중문화예술을 어떻게 생산하고 유통할 것인지에 대해서요. 연극에는 드라마터그라는 역할이 있잖아요. 최근에 ‘프레임 드라마터그’라는 말이 생겼다고 들었어요. 영상으로, 프레임 안에서 예술을 향유할 때 프레임 안에서만 보여 줄 수 있는 게 있다는 거죠. 그렇다고 관객과 예술가가 갑을 관계라기보다는 협력 관계라고 생각해요. 예술이라는 게 좋자고 만들고, 좋자고 보는 거니까요.
국범근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까요. ‘뉴노멀’에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사태 초기처럼 유감이 크지 않아요. 이번 여름 장마와 상당히 유사한 것 같아요. 장마철에 차라리 비가 와 버리면 날씨 탓을 할 수 있는데, 갑자기 맑은 날이 되면 부담스럽죠. 사실 제가 가지고 있는 많은 불행과 번민과 번뇌의 많은 책임을 코로나에 떠넘길 수 있어요. 내가 스스로 잘 버티며 살아갈 만한 체제를 이번 기회에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요. 마스크를 쓰면 얼굴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까 코로나가 끝나도 마스크는 애용할 생각입니다.
최서윤 사태가 장기화한 만큼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마주하게 된 세상에 또 적응할 기간이 필요하겠죠. 킵 고잉(Keep Going)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역사를 바꿀 수도, 과거를 바꿀 수도 없으니까, 어떻게 내 서사를 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죠.
이린 코로나 이후로는 계획을 안 짜게 된 것 같아요. 내일 일을 모르니까 큰 계획은 짜지 말아야겠다. (웃음) 확신할 수 있는 건 코로나 이후에 추억을 회상하거나 과거를 생각하는 게 엄청난 원동력이 된다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다를 것 같다는 거예요. 진부하지만 순간을 소중히 대할 것 같고, 매체로 기록하고 싶어 하는 욕심도 생겼고요. 1인 매거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거기서 나온 거예요.

2020년을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본다면?
국범근 저는 어떤 걸 색으로 연결 지어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연도도 좀 그래요. 올해는 미술 할 때 쓰는 물통. 그 물통에 담긴 물 색깔이 올해의 색인 것 같아요. 이 색, 저 색 섞여서 똥물처럼 변해 있는. 새로운 색을 칠하려면 거기에 붓을 씻어야 하잖아요. 그런 단계인 것 같아요. 다른 색을 칠할 기회가 앞으로 찾아올 거예요.
최서윤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이전과 이후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돼요. 올해는, 돌아보기?
이린 부유. 원래도 그렇지만 올해 특히 부유하게 된 것 같아요. 정착하지 못했다는 불안감도 심하지만, 언제든 놓고 떠날 수 있다는 마음가짐도 있어요.
김정엽 코로나 루덴스. ‘호모 루덴스’는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이에요. 우리가 이런 바이러스 상황 속에서 어떻게 유희해야 할까? 감염병, 대전염이 일어나는 시기에 예술은 멈춰야만 하나? 개인적으로는 바이러스에 먹힌 해가 아니라 바이러스로부터의 유희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놀고자 하는 습성이 드러나는 해였던 것 같아요.
김영비 마땅한 단어는 생각이 안 나네요. 무서운 단어만 생각나요. 친구들과 코로나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나요. 지구가 인구수가 너무 많아서 좀 줄이려고 하는 게 아니냐고요. 그렇게 생각해요. 지구가 인간을 선택적으로 살아남게 하고, 저희는 그저 지구의 뜻에 맞게 생존하고 있다.
백설이 동의해요. 그래서 저는 인류세. 코로나도 인류가 동물에게 폭력을 가했던 것이 돌아오는 거잖아요. 인간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지난 행동들을 되짚어 보는 시간이 아닌가 싶어요. 포스트휴먼 시대라고들 이야기하는데, 이런 시기에 정말 필요한 사유라고 생각해요.

대담을 진행하며 모두가 공통으로 이야기한 것은 교류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 때문에 이 대담에 참여했다는 말들도 있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가 그런 그리움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대담에서 엿볼 수 있듯 학우들이 저마다의 2020년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잠시나마 그리움을 잊고 당신만의 특별한 한 해와 작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서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