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뭘 하지 않기가 목표였어요.”
“평소 같으면 미루며 보지 않았을 고전들을 보고 있습니다.”
“카페 아르바이트하면서 손님도 없고 심심할 때마다 한 줄씩 시나리오를 써서 영상을 찍었어요.”
“코로나 루덴스. 바이러스로부터의 유희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놀고자 하는 습성이 드러나는 한 해였던 것 같아요.”
여기까지 읽으면 ‘예술학도로서 그럴 수(도) 있겠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합니다.
“올해는 미술 작업할 때 쓰는 물통, 그 물통의 색깔 같아요. 이 색, 저 색 섞여서 똥물처럼 변해 있는, 새로운 색을 칠하려면 거기에 붓을 씻어야 하잖아요. 그런 단계인 것 같아요.”
“마스크를 쓰면 얼굴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까 코로나가 끝나도 마스크는 애용할 생각입니다.”
똥물에 한 번 크게 웃고, 마스크 애용 선언엔 웃음이 번집니다. ‘그렇지. 이런 말이, 그런 생각이 한예종이지!’ 싶어서 말입니다.

A,R,T,S. ARTS의 네 번째 주제 S. Signature, 서명, 특징. 예술가의 이름 석 자는 이름보다 먼저 작품의 스타일로, 색깔로, 이미지로 각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스토리가 탄탄하든지, 디테일이 살아 있든지, 낯설고 새로운 무엇이어야 합니다. 2020년을 마무리하며 만난 작가와 작품들 역시 그들의 이름 석 자를 잊을 수 없도록 단단한 시그니처를 새겼습니다. 자신을 배제함으로써 자기만의 시그니처를 만드는 디자이너와 버려진 천들을 조각하여 인간의 장기를 소장하고픈 소품이 되도록 만드는 작가가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둘이어도 어머니와 손잡고 결혼식장을 들어가는 배부른 신부를 당차게, 인간의 존엄을 위하여 칠순을 코앞에 두고도 사회 만연된 성폭력에 맞서는 노인을 담담하게 그려낸 감독들이 그러합니다. 이처럼 예술가의 시그니처는 작품의 심볼이 되고, 마지막은 사인을 하는 영광의 순간으로 다가옵니다. 아티스트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항상 사인을 받는데, 그들이 남기는 한 줄 문구를 기대하게 되는 것도 아마 이같은 이유일 겁니다.

겨울이면 까만 롱패딩이 온통 거리를 점령합니다.
롱패딩 돕바의 원조가 ‘한예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 장시간 야외에 노출되는 영상원 촬영현장에서 동사를 면하기 위한 방한복으로 처음 제작됐다는둥 구 중앙정보부 건물 지하에서 밤샘 작업하던 미술원 학생들이 생존을 위해 공동구매하여 이불로, 침낭으로 사용하면서 처음 시작됐다는둥 전설같은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 까만 옷 사이로 보이는 로고는 어느새 예술을 꿈꾸는 이들의 부러움과 소장각을 부르고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그 모든 ‘K-OO’ 에 앞선 우리들의 시그니처, 우리를 우리이게 하는 시그니처입니다. 심히 오글거려도 어쩔 수 없습니다. ‘K-Arts’.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