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2025 AUTUMN55
사진 김경수

예술이
직업이 될 때
연극인 이오진

비교적 이른 나이에 극작가로 데뷔하여 활동을 이어가던 이오진은 자신의 작품을 연출하기 시작하더니, 이후 여러 작가의 작품을 왕성히 연출하며 ‘연출가 이오진’이 되었다. 그와의 만남은 ‘직업인’으로서의 태도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는 프로필 사진을 찍고 인터뷰하는 것 또한 연출의 일이라 생각한다며, 각자의 임무를 맡고 인터뷰 자리에 모인 이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묻고 인사 나누었다. 길을 걷다 만나게 되는 작업이 계획과는 다른 곳으로 데려갈지라도, 기꺼이 그 흐름에 몸을 맡겨온 그는 직업인의 책임과 춤추는 태도를 잊지 않으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극작과 연출을 넘나들며

어떻게 연출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2017년에 임정민, 김슬기 작가와 함께 서울청년예술단1사업을 신청하면서 페미니스트 극작가 동인 ‘호랑이기운’을 만들었어요. 사업에 선정된 후, 연출을 구하기도 어려우니 그냥 우리가 해보자는 마인드로 직접 연출을 하게 되었고, 그때의 경험이 좋았기 때문에 이후로도 연출을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여성 서사를 쓴 이후로 이 이야기는 우리가 연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저는 희곡을 쓸 때 머릿속에 작품의 뉘앙스나 분위기, 템포 등 결과물에 대해 구체적인 상상을 많이 하는 작가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쓰고 연출하는 게 성향상 잘 맞았고요. 물론 직접 연출을 하겠다 용기를 내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작·연출에서 나아가 타인의 작품을 연출하게 된 연유는 무엇인지, 더불어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상황과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까지 인기 많은 연출은 아니라서 뭔가를 고를 만큼 제안이 많지는 않습니다. 외부 작업 제안이 있을 시기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도 홀로 땅 파고 침잠하는 시기가 사람마다 다르지 않습니까? 저는 지금 눈앞에 있는 걸 하다 보면, 연이 닿은 누군가가 제안을 해주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이전의 제 작업을 보신 분들이 제가 뭘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나름의 판단을 해주시는 것 같고, 제 작업과 세계관을 긍정해 주는 분들이 작업 의사를 물어봐 주시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제안이 오진 않아요. 제안이 온 것들은 다 귀하게 여겼고, 운이 좋았었다고 늘 생각합니다.

본인의 작품을 연출할 때와 타인의 작품을 연출할 때, 태도나 작업 과정에 차이가 있나요?

크게 다르지는 않고요.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가 관객에게 잘 가닿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연출로서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이 작품이 지금 왜 올라가야 하는가, 세상에 어떤 좋은 일이 되는가, 관객들은 좋아할까, 등을 질문합니다. 제가 쓴 희곡을 연습실에 들고 갈 때는 이를 공연 대본이자 연출을 위한 재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글을 대하는 태도가 작가와 연출가의 중간 정도라고 할까요. 팀원들에게 질문을 많이 하고, 그들이 이야기해 주는 것을 토대로 연출하기 위한 대본을 만들어갑니다. 한편, 제가 연출만 할 때는 작가님에게 많은 질문을 하면서 희곡의 언어를 어떻게 무대의 언어로 만들 수 있을지를 조율합니다. 희곡 그대로 무대에 올렸을 때 작가의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을 것 같다고 느끼면, 작가님과 대화하며 추가나 보완 요청을 하기도 하고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제가 극작가였기 때문에 더 좋은 연출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작가가 느끼는 고통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본을 있는 그대로 무대에 올리진 않거든요. 저는 나름대로 연출가로서 해석의 렌즈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물론 적어도 작가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양쪽을 모두 경험해 본 입장에서, 극작과 연출, 각각의 재미 혹은 어려움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일단 연출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모두가 같이 움직이고 도와줘야 한다는 게 큰 특징입니다. 반면 작가는 문제도 내가 마주하고 해결도 내가 해야 하고 설득도 내가 해야 하죠. 저는 현재로서는 연출 작업이 조금 더 재밌는 시기예요. 그럼에도 미래에 무언가로 남는다면 작가로 남고 싶습니다. 연출을 열심히 하고 있어도 글을 쓰고 있지 않은 자신에 대해 늘 약간의 원망과 미움이 있어요. 지금 당장 무언가 바꾸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바뀌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글을 쓴다고 생각해요. 사실 글을 쓰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에요. 저는 글만 쓰던 시기를 벗어난 후 위염도 낫고 잠도 잘 자게 되었어요. 물리적으로 글 쓰는 시간이 많다는 건 그 고통을 삶에서 감당하고 수행하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하고, 이는 어떤 의지와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에 중요한 일이라고 하는 것이고요. 좋고 귀한 것들은 그냥 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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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이하로 구성된 단체에 매월 활동비를 지급하고, 작업 발표 시 이에 준하는 지원금과 멘토를 지원하는 서울시의 청년 예술 정책이다. 2017년에 시작되어 2018년에는 서울문화재단으로 이관되었으며, 청년 예술가들의 비판을 받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폐기 절차를 밟았다.

↑↑ 〈콜타임〉(대학로극장 쿼드, 2021) ‘호랑이기운’의 연극, 이오진이 작·연출을 맡았다. ©유종연
↑ 〈피어리스: 더 하이스쿨 맥베스〉(세종문화회관 세종S씨어터, 2020) 한국계 미국인 박지해의 희곡을 이오진이 공동 번역, 연출했다. ©김솔

연출 작업이 역으로 극작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지요?

극작만 할 때는 희곡이 어떻게 무대화되는가에 대한 감각을 거의 갖지 못했던 것 같아요. 예전엔 그냥 무대에 올리면 된다고 생각했다면, 연출을 하면서는 그 무엇도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느끼고요. 극작가가 무조건 연출을 할 필요는 없지만 낭독 공연 연출은 꼭 해봤으면 좋겠어요. 작품을 쓸 때, 그리고 연출과 소통하는 태도에도 도움이 되거든요. 낭독 공연은 본 공연과 달리 텍스트가 중심이기 때문에 작가가 내적 충족감을 많이 느낄 수 있어요. 친구들과 방에 모여 읽는 것도 좋고요. 혼자 대본을 쓰는 것과는 다른 일이거든요. 일상에서 하는 말, 텍스트로 쓰인 말, 그리고 입으로 발화되어 무대에 올라가는 말은 층위가 다 다른데 극작가가 이를 감각한다면 실질적인 도움이 많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생추어리 시티〉(두산아트센터, 2025) 공연 스틸 ©두산아트센터

구축하기, 허물기

평면의 텍스트를 입체적인 무대로 세우는 과정에는 어떻게 접근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지금 뭘 느끼는가에 집중하는 게 제 유일한 무기 같습니다. 내가 지금 뭘 느끼는지, 배우들이 지금 뭘 느끼는지, 그리고 관객이 지금 뭘 느끼는지를 감각하려 합니다. 저는 배우들이 읽기 전에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배우들이 말하는 걸 듣고, 배우 한 명이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같이 말하고, 서로 보고 있고 혹은 보지 않고 있고, 어디에 서 있고 혹은 앉아 있고 등 모양과 형태를 보고 들은 다음에야 텍스트가 어떤 형태를 상상하고 쓰였는지에 대한 감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느낌으로 관객한테 갔으면 좋겠다는 건 스스로 가져가되 연습실에서 발생하는 것들을 기반으로 본능에 충실하며 연출하는 편에 가깝고요. 특히 창작극을 연출할 땐 쓰는 과정에선 저에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배우들에 의해 움직여지고 말해진 다음에야 발견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디로 함께 가자고 이끄는 연출은 못 되고 팀원들을 고생시키는 편인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작품을 놓고 이야기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장 최근에 작업하신 연극이 두산아트센터에서 올라간 〈생추어리 시티Sanctuary City〉이죠. 개인적으로 작품을 희곡으로 읽었을 때와 공연으로 봤을 때의 느낌이 조금 달라서 재밌었고, 무엇보다 캐스팅 관련해서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이 희곡은 기억의 편린들이 80여개의 장면으로 이어져 있어요. 이 장면들을 현재형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과거형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서 작품을 연출하는 방식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연출한다면 보다 관조적인 태도로 연출할 것이지만, 저는 80개의 장면에서 인물과 배우들이 그 순간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해서 현재성에 집중했고, 따라서 전환이 빨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빠른 전환으로 인해 배우들의 움직임도 많았고, 현재성에 집중하는 것 외의 부차적인 요소들은 제거되었기 때문에 불친절한 방식으로 1막이 디자인되었던 것 같아요.

또한 영미권 희곡을 한국에서 공연할 때는 문화 번역의 측면을 고려하게 되죠. 이 작품의 세 인물은 모두 이민자이고, 현재 대한민국의 인구 중 5퍼센트 이상이 외국인인 상황에서, 외국인 배우 없이 이민자 문제를 다룰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렇게 아마르볼드(Amarbold) 배우가 함께하게 되었고요. 저는 연출을 하는 시점에 벌어지는 사건, 그 시대와의 교류를 감각하면서 연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25년의 〈생추어리 시티〉와 2035년의 〈생추어리 시티〉는 다른 작품일 것 같습니다. 10년 뒤엔 모든 인물을 외국인 배우로 캐스팅할 수도 있고, 외국인 배우가 아닐지라도 그 안에서 연출적인 방법론과 사회적 합의를 포함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문화 번역의 측면과 동시대적인 연출을 하고 싶다는 지향하에 움직이는 게 제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애 개 아파트〉(신촌극장, 2023) 공연 포스터 ©이오진

지금까지의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딱 하나를 꼽기는 어렵지만, 〈애 개 아파트〉(2023)라는 신촌극장에서의 작업이 떠오릅니다. 이 작품은 제가 아직 극작가도 연출가도 아니었을 때, 같이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하면서 알게 된 언니들과 십여 년 만에 만나서 올린 연극인데요. 뮤지션 ‘선과 영’의 복태, 그리고 펭귄어패럴에서 미싱을 돌리는 다원예술가 신소우주와 함께 만들었습니다. 애를 낳고 개를 키우면서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희망을 품었던 이오진이 아무래도 그것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판단 아래 눈앞이 막막해지는 상태에서, 언니들과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우리의 작은 소망과 작은 두려움, 그리고 우리의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가만히 돌아보는 작업이었어요. 이 작업은 근본도 없고 대의도 없고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만 있습니다. 그 시간을 귀하게 여기고, 뭔가를 획득하거나 달성하려는 것을 덜 했습니다. 사실 저는 너무 힘든 시기였는데 이 공연을 언니들과 함께하면서 어딘가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극작가의 생존과 미래

최근 〈2025 안산 극작가 아고라〉에 모더레이터로 참여하셨죠. 어떤 이야기가 오간 자리였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울예대와 안산문화재단의 협력으로 올해는 “극작가의 생존과 희곡의 미래”라는 주제 아래 행사가 개최되었습니다. 극작가로 활동하는 분들, 그리고 극작을 공부하는 분들이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자리였는데, 사실 극작가들끼리 만날 일이 없어요. 그렇기에 만나서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고, 상대적으로 팀원의 역학 안에 있지 않은 외로운 극작가들이 극작과 미래와 자기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자리였습니다. 먼저 극작가 네 분의 발제가 있었고, 이후 ‘생활과 생존’ ‘성장과 노력’ ‘교류와 현장’ ‘기술과 미래’라는 주제로 조를 나누어 라운드 테이블을 진행했어요. 저는 ‘현장과 교류’라는 주제 아래 참여했는데 연출과 배우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극작가가 연출을 만나 공연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많이 물어보셨어요. 대학 졸업과 필드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하는 시점 사이에 있는 분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함께 일할 사람을 만나는 것임을 느꼈습니다. 꼭 잘 되고 행복했으면 하는 다음 세대 극작가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작가님은 동료들을 어떻게 만나셨나요?

희곡을 발표할 수 있는 어떤 통로를 찾고 선정이 된다면 어느 정도는 자동으로 동료를 만나게 되지만, 사실 그걸 뚫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고요. 그걸 다 뚫어야만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건 좀 가혹한 일인 것 같아요. 이를 하나의 가능성으로 놓고, 평소 공연을 많이 보러 다니면서 나와 닿아 있다고 느끼는 창작자가 있으면 먼저 제안하고 물어보는 거 너무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요. 젊은 창작자 혹은 창작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서 들을 수 있는 수업이나 포럼, 라운드 테이블 같은 자리에 가서 눈에 불을 켜고 동료를 찾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제가 20대 때 어떻게 정민, 슬기 작가를 알게 되었냐면, 오세혁이라는 극작가가 제 희곡을 좋게 봐서 페이스북 메시지로 연락을 해왔어요. 시간이 흘러 “내 친구들과 한번 인사해 볼래요”라는 제안에 자리를 함께했고, 많은 작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있는 환경을 선배 작가가 준 거나 마찬가지죠. 누군가한테 DM을 보내서 평생의 친구가 되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만, 일단 빈도가 높아야 맞는 사람 안 맞는 사람을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제가 굳이 누구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서로에게 냄새를 맡고 가까워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왠지 같이 일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생기기까지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시온아트홀, 2021) 공연 ©박태양

연극인의 생존은 사실 위기가 아닌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극작가의 생존이 화두가 되는 이유는 뭘까요?

작가가 좋은 작품을 써도 연출을 하고 팀을 꾸리는 것까지 권한을 갖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작품을 무대화하는 과정에 있어서 작가가 소외될 수밖에 없는 환경적 요인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모여 연습하고 무대가 올라가는 과정에서 텍스트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요. 희곡이라는 건 공연 상연을 전제로 쓰인 문학 장르이기 때문에 아무리 희곡을 잘 써서 희곡상을 많이 받을지라도 무대화를 통해 극작가가 결과물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살아 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좋은 사례가 없진 않습니다. 극작가로서 연출과 만나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해나가는 작가들이 여럿 있고, 그분들을 보면서 극작가의 생존을 상상해 보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시간, 앞으로의 시간

청년 예술가로서의 시간을 지나온 입장에서, 현재 그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께 해주실 이야기가 있을까요?

제가 지혜롭게 그 시기를 잘 넘어온 사람이 아니라서 참아라, 그러려니 해라, 라고 말하진 못하겠고요. 다만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쏟아도 안 보이던 것들이 물리적으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냥 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그러니까 너무 많이 힘들어하지 않으면서 조금 기다렸으면 좋겠어요. 연극으로만 먹고 살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없습니다. 고정적인 아르바이트나 수입의 통로를 잘 만들어 두고, 작업과 균형을 잡으면서 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연극 작업을 하다 보면, 인터뷰나 특강, 책을 낼 수 있는 기회, 혹은 규모가 있는 프로덕션에서 안정적인 보수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생기기도 하죠. 그렇게 알바와 예술을 병행하는 훈련을 하다 보면, 나중엔 자기 삶을 더 유려하게 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생각해요. 그리고 힘들면 그만두는 것도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중간에 그만둔다고 무언가 실패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세계에서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걸 발견할 테니까요.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그 시간 동안 너무 슬퍼하지 않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오진 희곡집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제철소, 2023)

창작자로서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해나가고 싶으신가요?

어떤 작품을 만들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제가 원하는 세계는 있습니다. 인종, 학력, 나이, 고향, 장애, 병력 등에 상관없이 그 사람이 그 사람일 수 있는 세계이고요. 그 세계를 보고자 하는 제가 선택한 도구는 연극입니다. 제 연극은 그러한 세계가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지는 작업일 것이고, 어떤 게 가장 고유한 ‘나’인가에 관하여 팀원, 그리고 관객과 함께 질문하고 싶습니다. 저에게만 함몰되는 방식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 정동하는 방식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글 황지성
연극원 극작과 졸업. 작·연출을 하며 공연을 만든다. 극작을 할 땐 연출이, 연출을 할 땐 극작이 하고 싶어지는 불치병을 앓고 있다.

영상 안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