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문학과 미술의 경계에서 걷고 또 걸으며 사랑으로 기울어간 작가가 있다. 작열하는 무더위에 맞서 끈질기게 자신을 들여다보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이준용 작가. 그가 전시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동안 겹겹이 쌓아온 견딤의 시간과 머묾의 순간을, 그리고 예술가이자 한 사람인 이준용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시 창작 입문반》은 홍제천에 위치한 전시공간 미학관(美學館)에서 7월 4일부터 8월 3일까지 진행된 이준용 작가의 개인전이다. 이전까지 종이 드로잉 작품으로만 구성되었던 전시와 달리 《시 창작 입문반》은 유화 작품으로만 구성된 첫 전시였다.
작가는 올해 초, 자신의 후배인 이희우 평론가의 ‘시 읽기’ 강의를
수강하며 시에 입문했고, 시를 읽고 쓰는 법을 더 배워보고자 동문인
김연덕 시인의 강의까지 듣게 되었다. 그는 김연덕 시인의 강의
커리큘럼에서 “시 속에서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설명이 특히 인상 깊었다. 글자 몇 개의 조합으로 나의
세상이 무한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니. 지금껏 일상적인 장소와
상황만으로 작업해 왔던 그는 어쩌면,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으나
스스로가 정해두었던 규정 안에 머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시를
접한 이준용 작가는 그 규정 이전의 호기심 가득하던 마음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는 대학 졸업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작업실까지
마련했다.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유화에 도전하기 위해 이준용
작가는 용기를 내어 붓을 들었다.
은호 안녕하세요, 작가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도 작가님의 개인전을 다녀왔는데요. 이번 개인전 《시 창작 입문반》이 진행되는 동안, 작가님은 그림을 수정하고 벽에 걸린 작품의 순서를 바꾸고, 서문을 다시금 작성하셨다고 하셨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그 과정이 ‘떠나보내다’라는 동사와 ‘첫 번째 마음’이라는 명사가 교차하는 지점처럼 느껴졌습니다. 변경된 서문들을 차례차례 읽는 동안, 과거와 작별하는 작가님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 같았거든요. 또한 기존에 걸려있던 그림에 다시 물감을 얹고 덧칠을 하며 새로운 유화를 만들어내셨다고 하셨지요. 거듭 반복되는 작가님의 작업은 마치, 경계에서 망설이던 한 사람이 이제 가장자리를 따라서 걷기 시작하는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준용 제가 오랫동안 종이 드로잉 작업만 하다가 이번에 처음 유화와 시 책자(습작들)로 이루어진 개인전을 열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오픈할 때가 되니까 너무 창피했습니다. 도저히 첫날 걸어둔 그 상태로 한 달을 버틸 자신이 없어 고치기 시작했어요. 기껏 걸어놨던 그림을 전시장 문 닫을 때마다 한 점씩 작업실에 가져가서 덧그리고 덧그렸습니다. 작품 수정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원래 시 책자 첫 장에 에세이가 하나 있었어요. 괴로움의 근원을 파고들다가 가족에 관한 이야기에 도달했고, 이어서 앞으로 나는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 없을 거라는 자책과 비관을 도출해 놓은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관람객들이 제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니 싫었어요. 모르는 사람들에게 제 치부가 드러나는 것 같았거든요. 이번 개인전을 방문해 주신 조형예술과 김지원 교수님께 ‘이런 글을 그만 썼으면 좋겠다. 너의 힘든 이야기를 계속 듣기 힘들다’라는 메모를 받기도 했습니다. 기분이 상할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해방되는 느낌이었어요. 나도 싫고 남도 싫으면 안 꺼내면 그만인데, 왜 여태껏 하기 싫은 걸 계속해 왔을까? 내가 지금까지 나의 괴로움을 작업의 동력으로 이용해 왔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에세이를 지웠어요. 지우면서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나를 미워하지 않으면서 작업을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과정이 저에게는 일종의 치유처럼 느껴졌습니다.
은호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작가님의 마음에 전환이 일어난 것 같아요. 좋아하는 마음으로 다시금 전시를 진행하시게 된 것 같습니다. 전시 마지막 날까지 이어진 작업 과정이 인상적이었는데요. 그 과정을 좀 더 들려주세요.
준용 첫눈에 반할 수 있는 그림을 아직은 만들 수가 없었기에 계속 손을 댔습니다. 유화 작업에 있어 미숙함도 컸고 수정할수록 그림이 좋아지는 것 같았거든요. 이번 전시는 큐레이터 친구와의 대화에서 힌트를 많이 얻었어요. 가방 무거운 날엔 구두 신고 날아가고 싶다는 그 친구의 이야기에 〈집에 가는 길〉 이라는 소품을 그리기도 하고, 날개 달린 꽃다발 드로잉도 하게 되었어요. 제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새로움을 발견할 기회가 드물어요. 일하고, 작업하고, 집에 가는 루틴의 연속이기 때문에요. 그래서 친구들의 이런 감상들을 주의 깊게 듣곤 합니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알아간다는 건 행복한 일이니까요. 나와 다른 시선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을 제가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 관점에서 작업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에요. 그렇기에 제가 연애를 하거나 사람을 자주 만나던 시기의 작업들이 긍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여기서 밝혀두고 싶은 것이 있는데, 사적인 것을 그대로 가져와 작업에 반영한다는 오해를 받을 때가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제 나름대로 가공을 하고 이미지로 전환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려고 하거든요. 시도, 드로잉도, 유화 작업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재현되는 대상에 여러 가지 속성이 존재하겠지만, 저 나름의 특정한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해요. 하나의 그림은 개별적으론 하나의 말하기 단위이지만, 이것들이 모였을 때 드러나는 삶의 다양한 양상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작지만 여러 개의 그림이 모인 풍경을 좋아해요. 삶의 다양한 면면들이 드러나니까요.
무엇보다 미술 작가는 특정한 모양의 창문일 뿐, 내 멋대로 바깥의 풍경을 바꿀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각자 할 수 있는 작업의 종류가 정해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내가 다른 작가처럼 할 수 없는 나만의 고유한 것이 있고, 이것이 일종의 타자성을 구축하는 것 같습니다. 창문은 나를 드러내는 거울이 아니라, 타인과 공유하는 가지각색의 액자이니까요.
은호 작가님의 그림들과 시 책자가 한데 어우러져 있던 전시회장의 풍경이 떠오르는데요. 시를 쓰고, 그림과 함께 보여주는 것은 이전의 작업과 어떻게 달랐는지 궁금합니다. 또 드로잉과 유화의 매체적 차이도 어땠는지 듣고 싶어요.
준용이번 전시에서는 그림 속 대상들을 자유롭게 상상했습니다. 시 쓰기 수업에서 읽고 쓰며 배운 ‘아무렇게나 해봐라’라는 감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강아지의 이빨이 빛이 난다든가, 눈사람이 눈물 사람이 된다든가 등등. 그림 속에서도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을 시도해봤습니다.
이전까지 드로잉 작업에서는 늘 현실 기반의 이미지를 만들어왔거든요. 저는 드로잉을 오래 해왔습니다. 드로잉은 얇은 매체이고, 물리적으로 무언가를 쌓아 올리기가 힘들지만, 유화는 그렇지 않아요. 그림이 마르는 시간을 기다려야만 그 위에 무언가를 다시 얹을 수 있습니다.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심지어는 단숨에 나아갈 수 있는 드로잉과 달리, 페인팅은 그럴 수 없습니다. 액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아야 진행되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좌초되는 지점이 분명하게 발생해요. 애초에 페인팅은 완결된 경로가 없기에, 좌초된 지점에서 진짜 그림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래,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내비게이션을 끄고 당장 눈앞의 이 그림에 집중해보자, 라고 결심하게 되더라고요. 이 그림이 무엇이 될지 고민하면서.
은호 모르는 것을 사랑하는 용기, 언어와 그림의 경계에서 기꺼이 사랑으로 기울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준용이번 전시를 위해 집에 작업실을 작게 만들어봤어요. 방 한 칸을 비우고 타일을 깔고 나무 가벽을 설치해서 작업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그림을 그리고 출근을 했습니다. 주 5일 9-6 업무와 작업을 병행하고 있거든요. 유연근무 출퇴근을 했는데도 시간이 부족했고, 휴가를 써서 며칠 동안 작업했는데도 제대로 집중이 안 되더라고요. 실제로 졸면서 그릴 때도 있었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전시에 임박해서는 친구의 작업실을 빌려 그림에 몰두했습니다. 좁고 어두운 창고 안에서 땀범벅 상태로 작업을 이어 나갔어요.
최적의 작업 환경은 아니었기에 전시회장에 그림을 가져가니 이미지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환했던 그림의 색이 어둡고 탁하게 보이기도 했고, 그걸 해결하려 고치다 보니 물감의 농도로 인해 그림에 붓질이 어려울 때도 있었어요. 어디에서 그림을 끝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전시장에 걸어놓은 그림을 다시 가져와서 수정하기를 반복했습니다. 다듬고 또 다듬었습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있는 힘을 다해 공들인 만큼 작업에도 그러한 면이 드러나면 좋을 것 같아요. 《시 창작 입문반》 제 다섯 번째 개인전인데, 처음으로 최선을 다한 작업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은호 전시회장에서 작가님의 그림과 시 습작을 나란히 놓고 볼 수 있었는데요. 각각의 작품이 서로를 비추거나 흔들면서, 고유한 감각을 만들어내는 듯했습니다.
준용 시 습작, 즉 글에서부터 출발해 그림으로의 전환은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반대로 그림에서 글로 가는 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둘이 비슷하면서도 참 다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시 쓰기 강의를 수강하던 도중에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눈물 사람」이라는 시를 써갔는데, 선생님이 말 자체가 성립이 안되니까 다시 써오라고 했어요. 눈사람과 눈물 사람이 다르다고 설명하시더라고요. 눈사람은 눈덩이 두 개가 위아래 포개어져 쌓일 수 있는데 눈물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 말이 재밌었어요. 전시장에 걸린 그림 〈눈물 사람〉과 책자 속 시 「눈물 사람」이 연결되는데요.
지나가던 멍든 사람이
‘눈물 사람아’
다정한 목소리로 불렀을 때였다.
어느 겨울날 걷다가 눈사람을 봤는데 녹아내리고 있더라고요. 그게 멍든 것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접한 풍경이 어떻게 시로 나타나게 되었고, 그림으로 나아가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할 말이 정해져 있다면 뭐 하러 시를 쓰냐, 라는 이야기를 이성복 시인의 『무한화서』에서 읽은 것 같아요. 그림도 그렇습니다. 시와 마찬가지로 그림이란 건 애초에 명확할 수 없어요.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에 그린 갤러리 맞은편, 홍제천 풍경도 그러하고요. 사람들이 곁에 머무는 풍경에서 글을 가져오면 좋겠다, 해서 쓴 서문도 있어요. 실제로 전시장 벽 뒤에서 지킴이를 하면서 관람객들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거든요. 제게 와닿는 모르는 세상들이 좋아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해하면서 자유로워지는 것 같거든요. 거기서부터 예술이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은호 작가님의 《시 창작 입문반》 전시를 감상하고, 서문과 시 습작들을 읽으면서 떠오른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송별회입니다.
준용 어느 순간, 내가 나로서 할 수 있는 작업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 창작 입문반》 전시는 이젤 앞에 처음 서는 나, 시를 처음 배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처음이란 건 한 번 뿐인데, 저는 이 처음을 다섯 번째 개인전까지 유예해 온 것 같고, 그 과정에서 변화의 기회를 많이 놓쳤습니다. 다섯 번의 전시를 합쳐서 한 번의 전시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앞으로는 그림과 글이 홀로 설 수 있는 전시를 만들고 싶습니다. 작업 바깥에서 고군분투하고 번민하는 저 같은 캐릭터가 사라져도 괜찮은, 그 자체로 단단한 전시를요. 예술사 졸업한 지 올해로 10년 차인데요. 저는 이제서야 진짜 시작을 합니다.
은호 작가님의 진짜 시작에 앞서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준용 저는 사람들이 제 전시장에 오래 있는 게 좋아요. 그래서 매 전시마다 의자와 책상을 가져다 두었어요. 쉽게 소비되는 작업이 아닌, 곁에 머물고 싶고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작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졸업 후 지금까지 저는 학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 학생들을 마주칩니다.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실패의 순간마다 자기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자기 괴로움을 작업으로 위로받을 생각도 그만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봉합되지 않는 괴로움을 거즈로 덮을 줄도 알아야지, 아프다고 계속 들여다보면 피만 철철 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다치지 않아야 작업도 할 수 있습니다. 간혹 학생들 보다 보면 너무 위험하게 작업해서 걱정됩니다. 부디 몸 생각하면서 작업하시길.
나의 ‘모름’을 그 자체로 두고 응시하고 서성이며, 한 손으로 붓과 펜을 든 이준용 작가. 그의 마음은 멈춰있다가 이제 막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떨림과 머뭇거림을 견디는 용기의 방향으로. 그 모습은 구석진 뒤란에서 마주친, 불가해한 가능성이었다. 존재의 자그마한 기척에도 귀를 기울이고 조심스레 손을 내미는 이준용 작가. 그가 처음으로 인사를 건네는 순간이다. 이준용 작가가 그려낸 기이한 환대의 풍경은, 앞으로 그가 말하고자 할 그림일 것이다.
글 주은호
연극원 극작과 서사창작 전공 재학중. 미지의 사랑을 발굴했습니다.
탐사에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