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평등을 얘기하면서 왜 군대 얘기는 안 하나요?”1
“괜히 여자들에게 CPR 했다가 성추행범으로 몰리는 것 아닌가요?”
“여성 인권 좋죠. 하지만 성소수자 얘기는 안 하면 안 될까요?”
“‘성중립 화장실’이 여성 안전을 더 위협하는 건 아닌가요?”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진부한 질문들. 그 앞에서 나는 차라리 침묵을 택하고는 한다. 하지만 무시로 일관한다는 편리한 선택지가 늘 주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때로는 상냥함과 단호함으로 무장한 채 대화를 이어 나가야만 한다. 길고 험난한 여정을 떠나기 전, 주머니에 넣어두면 든든할 책이 있다. 『당신은 제게 그 질문을 한 2만 번째 사람입니다』(날, 2025)는 여성학자 오혜민이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5년 반 동안 〈예술가의 젠더 연습〉을 강의하며 끊임없이 들어온 질문들에 대한 답변과 미처 다 하지 못했던 말을 담은 책이다. 시종일관 유연하고 재치 있게 차근차근 답하고 반박해 나가다가도 때때로 “모든 질문에 대답할 의무는 없습니다.”(51p)라고 단호히 말하는 저자의 태도는 강의실에서 보았던 그것과 꼭 닮아 있다.
책장을 넘기며 자연스레 어떤 기억을 겹쳐 읽게 되었다. 〈예술가의 젠더 연습〉 수업에서, 학교 안과 밖에서, 뉴스 댓글 창에서, 가까운 친구 혹은 가족에게서 듣게 된 질문들과 이어지는 언쟁, 혹은 그마저의 의지가 생기지 않아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거나 포기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현실에서 반대 의견을 가진 이와 대화하기는 무척이나 어렵고, 다수를 상대로는 더욱 그렇다. 해가 갈수록 부딪히고 설득하는 이들의 수는 점차 줄어가는 것만 같다. 만나서 부딪히고 대화해야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던데, 애초에 그 만남과 대화 자체가 너무나도 버거운 탓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반페미니스트의 주요 전략 중 하나는 무의미한 말을 통한 무의미한 논쟁을 양산하는 것이다. ‘페미니즘 대 휴머니즘’이라는 왜곡된 구도를 형성하고, ‘집게 손’과 같은 실체 없는 남성 혐오를 부풀리는 등의 ‘활동’은 실제 사회 문제들에 집중할 힘을 소진시켜 버린다. “이것은 모두의 삶에 아주 중요한 문제, 이를테면 모든 세대에 미치는 젠더 불평등 문제 같은 것마저 논의할 가치가 없는 무의미한 말장난으로 전락시켜”(150p) 버리는 일이다. 결국 논쟁 끝에 남는 것은 지리멸렬함과 “ 지긋지긋하다는 감정”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SNS에서 차단 버튼을 누르듯이 입을 닫고 눈과 귀를 막아버리면 그만일까? 간편하겠지만, 대화의 여지를 아예 지워 버릴 수는 없다. 우리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이의 대통령 당선을 목격한 바 있다. 중요한 건 당장 눈앞의 혐오를 깨트리는 일이다. 필수 교양 과목으로 강의실에서 교수자와 학생으로 만난 페미니스트와 반페미니스트라면 더더욱 정면으로 마주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신은 제게 그 질문을 한 2만 번째 사람입니다』는 교실에서의 혐오를 일축하지 않고 성실하게 답해 온 저자의 투철한 사투의 기록이다. 분량과 형식에서 책은 날카로운 이론이나 깊이 있는 분석을 겨냥하고 있지 않다. 다만 현 한국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질문들을 모아둔 핸드북에 가깝다. 필요할 때 언제든 손쉽게 꺼내 쏙쏙 골라 쓰고, 살을 덧붙여 나중을 위해 아껴둘 수도 있는 일종의 ‘개념원리’다.
“국내 대학 최초이자 유일하게 성평등 공통 필수 교과목으로 개설된 본교 〈예술가의 젠더 연습〉은 2016년부터 총학생회를 비롯한 여러 학생들과의 꾸준한 논의를 거쳐 2018년 2학기, 시범 운영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6개원 전체 1학년 공통필수 과목으로 운영되며, 문화·예술계의 예비 전문예술인들이 젠더 개념을 바탕으로 차별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이에 대한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학생들은 일상생활과 창작 현장에서 발생하는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에 대해 창작자로서의 윤리적 책임을 고민하고, 더불어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창의적인 사고를 훈련할 기회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수업은 ‘다름’을 이유로 발생하는 수많은 차별의 시선을 넘어 평등한 사회와 예술을 상상하고 실천할 수 있는 예술가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을 중요한 교육적 가치로 바라봅니다.”
수업 〈예술가의 젠더 연습〉에 대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과젠더연구소’의 공식 설명이다. 근사한 수식어와 단어들이 가득하다. 입학 후 첫 수강 신청을 앞두고 〈예술가의 젠더 연습〉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이 얼마나 부풀어 올랐었는지 기억한다. 페미니즘 수업을 필수 교과목으로 지정하다니, 들뜨고 반가웠다. 그렇게 2022년 봄, 아직 여전했던 팬데믹의 여파 속에서 줌으로 오혜민을 만났다. 열악한 환경임에도 이런 교실을 또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반짝거림으로 가득했던 수업이었다. 자유로운 소통을 위해 교실 안의 모두가 평어를 썼고, ‘오답의 가능성을 기억하되, 정답 대신 질문이 활발한 공간’2 을 지향하고자 했다. 간혹 마주하는 예기치 못한 장면들에는 다정하면서도 단호한 음성이 뒤따랐다. 학생들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선생님의 존재는 교실 안팎에서 소중했다. 하지만 동시에 수업은 위태로웠다. 학교의 책임과 보호 없이 폭력에 그대로 노출된 강사, 평등 수칙에 어긋나는 발언들이 튀어나올 때, 수강 신청 시즌이 돌아오는 대로 〈예술가의 젠더 연습〉을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자자할 때마다 수업의 존폐는 늘 희미했다.
1
오혜민, 『당신은 제게 그 질문을 한 2만 번째 사람입니다』,
날(2025), 책의 각 절은 저자가 받았던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본문에 직접 인용된 질문들은 모두 책에 등장하는 것이다, 이후 본문에
인용시 쪽수만 표기.
2
오혜민의 강의실 규칙 중 일부, 전문을 확인하고 싶다면 책 5~6p.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은 여성들이 완전한 평등을 달성했을 때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커졌을 때 터져 나왔다.”라는,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아르테, 2017)의 유명한 문장처럼 2015년부터 밀려온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물결은 그 결실을 채 보기도 전에 거대한 반격에 가로막혔다. 딥페이크와 같은 기술 발전에 따른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는 한편, 근본적인 위계 폭력과 구조적 성차별 사건은 끊이질 않는다. 주요 언론은 반페미니즘을 전략으로 삼아 몸집을 키우는 이들에게 확성기를 쥐여준다. 페미니스트를 향한 검열이 시작된 지는 이미 오래다. 그 사이사이 공격당하는 집단은 자꾸만 발생하고 이내 밖으로 내몰린다. 세상이 더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무너져가는 느낌에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진다. 오혜민에 따르면, 이러한 세상 흐름 속 교실 역시 안전하지 못했다. 수업 첫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던 학생이 학기가 흘러가며 조금씩 ‘귀를 여는 기적’을 종종 목격했으나, 그나마도 반페미니즘의 흐름이 거세지면서 더 어려워졌다.
“학생들에게 ‘젠더’를 얘기하면 화를 낸다. 가부장제에 의한 구조적 ‘억압(Oppression)’보다 개인적 ‘억울함(Depression)’을 먼저 얘기해야만 수용성이 높아진다. 페미니즘이 ‘선한 윤리’를 기반으로 하는 사유 방식이자 실천임을 증명하고 설득하는 교육에는 수많은 난관이 존재한다.”3
3
2024 한국여성학회 춘계학술대회 〈한국여성학회 40+ 연대와 확장:
페미니즘의 과거, 현재, 미래〉 기조 세션 발표 가운데, 이유진,
“딥페이크·불법촬영… ‘디지털 폭력 산업’ 얼굴을 찾아라”, 《한겨레》,
2024,06.20.
근사한 수식어들로 설명되는 수업이 실은 문제에 비해 너무나 얕은 조치였음을 이제는 안다. 학교가, 그보다 앞서 사회가 폭력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교육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한예종 내에서도 강사에 따라, 원과 과에 따라 수업의 편차가 큰 이유가 여기 있다. 2019년 14명이 수업을 시작했지만, 그중 11명이 그만뒀다. 마찬가지로 같은 해 부임한 오혜민이 2024년 학교를 그만두기까지 자리를 지킨 여성학 전공자는 오혜민 한 명뿐이었다. 수업이 왜 필요한지 사전에 마련된 합의 없이 설득과 책임이 오로지 강사에게 전가된 수업은 전장과 같았다. 〈예술가의 젠더 연습〉이 처한 상황과 이를 둘러싼 수많은 말들은 학교와 사회의 현주소를 가리킨다.
지난 학기 말, 필자가 활동 중인 동아리 돌곶이포럼은 한 대자보를 붙였다. 제21대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여성을 향해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은 이준석 후보에 대한 비판과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내용의 대자보였다. 대자보를 부착하고 한 시간이나 흘렀을까. 대자보가 훼손되었다는 제보를 받았다. 제보받은 사진 속 대자보는 잔뜩 화가 난 누군가의 손에 의해 갈가리 찢긴 상태였다. 같은 날 오후, 대자보 부착을 위해 방문한 영상원 3층 복도에서는 어떤 광경을 목격했다. 해당 복도는 방송영상과 학생들이 2018년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학내 위계 폭력에 대항하는 대자보들을 붙여온 곳이다. 몇 년간 쌓인 투쟁의 역사 위에는 여성을 향한 욕설의 초성이 마구 도배되어 있었다. 원색적이고 치졸한 흔적이었다.
한예종에서의 마지막 학기 종강을 앞에 두고 오혜민은 한 대자보를 붙였다. “ 마지막 종강 편지”라는 제목의 종이 두 장을 빼곡히 채운 대자보에는 한예종에서의 11학기를 종료하며 느꼈던 소회와 학생들에게 전하고픈 마지막 말이 담겨있었다. 스스로를 ‘투머치 토커’라 칭하는 이가 6년여를 몸담은 학교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 그간 과연 없었을까. 표현의 자유를 중시한다는 한예종에서 그가 진정 그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순간은 마지막 학기 종강 직전 붙인 대자보가 전부였다. 수업이 시행된 뒤로도 학내 위계 폭력 사건과 혐오 발언은 끊이질 않았다. 수업부터 시작해 보겠다는 태도와 수업 하나로 책임을 다했다고 여기는 태도는 아주 다를 것이다. 필수 과목으로 지정했으니 ‘할 만큼 했다’라는 과대평가와 방임 속에서 대자보는 계속해서 훼손될 수밖에 없다.
“‘페미’들이 뭐라든~ 이라는 마음이 들어서 책을 덮고 싶다면, 잠깐 기다려 보세요. 당신의 삶은 ‘반페미니즘’으로만 정의할 수 있을 만큼 그저 단순한 무엇인가요? 아니면, 저만큼이나 아주 복잡한 면모를 갖춘, 그리고 누구에게는 그 복합적인 면모를 오롯이 인정받기를 원하는 그런 존재인가요? 당신이 후자로 존재하길 원한다면, 저는 이 책을 통해 당신과 대화를 이어 가고 싶습니다.”(9~10p)
책의 부제는 ‘지치지 않는 페미의 대답’이다. 하지만 책의 끝에서 오혜민은 자주 지치고 무너져 내린다고 고백한다. 그는 “매번 지고, 매번 실패”한다. 부제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의 문을 닫을 생각이 없다는 의지의 표기다. 지치지 않아서가 아니라, “ 지금 당장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가 아니라는 것”(170p)을 알기 때문이다.
훼손된 대자보 앞 복도에서 마주친 학생들은 함께 대자보의 힘이 지속되기를 희망하는 종이들을 만들어 부착했다. 욕설의 초성을 연대의 언어로 고쳐 쓰고, 그림을 그리며 웃고 떠들었다. 그 순간, 여성이라면, 페미니스트라면 지긋지긋하게 마주쳐왔을 욕설들이 가할 수 있는 해는 없었다. 웃음 앞에서 혐오는 힘을 잃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함께하도록 만들어 주었을 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색색의 아름다운 연대의 메시지와 그림들은 몇 시간 뒤 한층 더 저열한 욕설들로 다시 훼손되었다. 학생들은 곧바로 복도로 돌아가 더 많은 종이를 붙였다. 돌곶이포럼이 붙인 훼손된 대자보 또한 이를 발견한 학생들이 이어 붙여 주었다. 그렇다. 대자보가 찢기면 이어 붙이면 그만이고, 떼 버린다면 다시 붙이면 그만이다. 무엇도 수포로 돌아가지 않으며, 누구도 멈추지 않는다. 대자보를 수선하는 일은 훼손과 실패를 연대의 리듬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찢겨 나간 자리에서 피어난 말들은 실패 속에서 춤을 춘다. 따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묻고 답하자.
어느날, 지긋지긋한 감정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다른 물음이 채우길 바라면서.
“어떤 폭력과 차별이 나만은 피해 가기를 바라면서 나 대신 누군가를 내줄 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109p)
글 김희재
미술이론과 방송영상을 공부하고 있다. 자주 쓰고 이따금 찍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