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2025 AUTUMN55
©홍콩-한국 연대 상영 기획팀

침묵에 대해 말하는 연습 :홍콩-한국 연대 상영
〈투쟁하는 여성의 신체〉

“혹시 홍콩 영화 상영회를 기획해보지 않을래요?”

홍콩-한국 영화 연대 상영회는 어느 밤에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로부터 시작되었다. 작년에 소리그림에서 〈홍콩-한국 영화 연대 상영회〉를 기획했던 홍다예 감독의 전화였다. 내가 그전까지 홍콩에 대해 잘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아시아 관련한 여러 움직임들을 멀찍이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다. 제안을 받고 나서야 불현듯, 홍콩 현지 상황을 전해 들은 지 꽤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홍콩보안법1 시행 강화 이후로 표현의 자유가 전보다 더 강하게 제한되었기에, 뉴스나 미디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소식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고 있지 않고 침묵이 이어진다는 것은 오히려 내부에서 특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인데, 이번이 그 침묵을 가시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어딘가, 검열을 가시화하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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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는 2020년 6월 30일 홍콩보안법을 도입해 홍콩 사회를 강력하게 통제했고, 4년 뒤인 지난해 3월 홍콩 의회는 이 법을 강화하고 구체화했다. 홍콩보안법은 반역과 국가분열, 반란, 불복종 선동, 정부 전복, 국가기밀 절도, 간첩 행위 등 안보 관련 39개 죄목과 구체적인 처벌 수위를 정하고 있다. 이정연, ““반대의견 침묵 부른” 홍콩보안법 시행 5년…중국 “새로운 저항 지속돼””, 『한겨레』, 2025.06.22

온라인에서의 만남

일단 만나서 대화부터 해보자는 마음으로 홍콩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들과 온라인 화상회의로 모였다. 총 3명의 홍콩 감독과 1명의 기획자가 함께 참여했다. 그들은 홍콩에서 대안 공간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첫 회의 때는 쏟아지는 정보와 낯선 영어 억양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홍콩 감독들은 작년에 서울의 상영 공간인 소리그림에서 홍보 없이 암암리에 상영회를 진행하며, 두 지역의 유사성을 발견했다고 전해주었다. 사회운동에서의 상실감, 움직임을 통제하려는 흐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 가족 안에서부터 갈라지는 사회적 분열까지. 거대한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발견된 유사성에 반응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들은 조만간 한국의 민주주의 투어를 위해 한국에 방문할 예정인 차에, 홍콩에서는 검열로 인해 상영할 기회가 없거나 삭제되어야만 했던 영화를 올해도 한국에서 상영할 수 있길 바랐다. 한국에서는 작년의 상영회 이후로 12·3 계엄이 있었기에, 올해는 작년과는 또 다른 태도와 방식으로 영화를 함께 보고 또 말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영 공간과 기획단 모집

상영 공간은 상영의 분위기와 상영 이후의 토크 구성에 영향을 준다. 기획 초반에는 접근성이나 다양한 관객을 모집할 수 있다는 면에서 학교 바깥에서의 상영을 고려했다. 하지만 현재 학교 내에서 홍콩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부재한다고 느꼈고, 학교에 그런 시공간을 잠시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교내 상영을 추진했다. 물론 금전적인 이유도 있었다. 학교라는 장소는 잠시 동안 점유하고 침투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작년 12·3 때 침투되기도 쉬웠던 것처럼 말이다. 계엄을 전면으로 경험한 이 공간2에서 외부와 내부, 과거와 미래를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국가 폭력이라는 공통된 현실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또 어떤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그렇게 영상원 대시사실 L219을 대여했다.

교내에서는 영상이론과의 상영기획팀과 시사팀이 학생 자치 기구로서 상영회를 열어왔다. 또한 돌곶이포럼은 학교 내에 여러 의제와 담론들을 끌어오면서 각기 다른 자리에 위치한 학생들이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게끔 하는 자치활동들을 지속적으로 해왔고, 나 또한 참여자로 함께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상영기획팀에게 상영 지원을, 돌곶이포럼에게 당일 행사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선뜻 합류한 동료들로부터 친구의 친구를 소개받으며, 그렇게 하나둘씩 사람들을 모아갔다.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해줬는데, 돌곶이포럼 부원 중 한 명은 당일에 베이킹을 하여 비건 바나나빵을 만들어줬고, 그 빵을 판매하여 상영 기획에 필요한 자금과 기부금을 모금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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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은 지난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날에 학교를 폐쇄하고 학생들에게 귀가 조처를 취했다.

100개의
비건 바나나빵을
구워준 정현

일단은 단순하게 여러분이 너무 좋고 상영의 의미가 너무 좋으니까요.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과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요. 빵을 만들고 나누는 것이 일종의 연대 참여라고 생각해요. 저는 분명 이것들을 비노동으로 인식하지만, 어떤 차원에서는 명백한 노동이지요. 생각해보면 저도, 소정을 포함한 상영기획팀들도 다양한 활동가들도 늘 노동을 비노동의 영역에서 하는 것 같아요. 현재 사회질서 속에서 명확하게 전산화되지 못하는 가치들이 있으니까요. 이번 상영회에서는 동아시아 민주사회에 대한 기대, 연대, 변화의 요구, 아주 작게는 고생하는 멋진 친구들에 대한 사랑… 물론 비노동에 기대고 있기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들이 지금의 나를 즉각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 같아요. 반찬 많이 하면 윗집과 나눠 먹는 그런 감각. 공동체에 대한 감각.

나라는 개인이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알고 있는 것도 많지 않았으니,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보는 것이 중요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은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을 찾으면 된다는 마음이었다. 함께한 이들의 참여 동기는 모두 달랐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말하는 점이 닮아있었다.

상영회를 같이 하자고 제안하면서 나는 사람들이 홍콩에 연루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만들기’로 인해 이전과 다른 위치에 서게 되는 것처럼, 상영회 기획하기를 통해서 내가 그렇듯 동료들이 홍콩과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길 바랐다. 한국과 홍콩을 겹쳐보며 차이와 유사성 모두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다. 상영회 자체가 일종의 스피커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최대한 다양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하게 되었으면 했다. 함께하기 위한 첫 단계로, 시간이 빠듯하더라도 자막과 통역이 필수적이었다. 챗-GPT를 활용하고 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영화의 한영 자막을 제작하고 교차 검수했다. 현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영어를 편히 느끼는 친구들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그렇게 더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 낼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상영 기획팀
아현

제안받았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어서 함께하겠다고 했어요. 그동안 팔레스타인이나 미얀마의 영화 상영회를 진행하면서 ‘함께 영화 보기’가 정말로 우리에게 연대를 만들어주고 있다고 느꼈고 또 스스로도 상영회를 진행하는 일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어요. 저는 점점 영화 자체보다 영화 만들기와 영화 보기에서 의미를 느껴요. 큰 시스템이 우리를 지배하는 불안감 속에서 가장 간단하면서 중요한 실천은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영화를 매개로 임시적인 보금자리가 만들어진다고 느낍니다. 물론 좋은 영화가 주는 마술적 순간들이 우리의 연대를 더 소중하게 하고요. 우리의 저항이 만남과 연결에서 오는 것이라는 걸 매번 느낍니다. 우리가 만드는 부분적인 연결들이 우리들의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을요!

영화 선정하기

홍콩 기획팀과 한국 기획팀 모두 각 나라의 영화를 찾고, 서로의 팀에게 제안하고, 해당 감독에게 스크리너를 요청하는 과정을 거쳤다. 한국팀에서는 4가지의 단편이 함께 묶여 있는 〈애프터 미투〉(강유가람 외 3인 연출, 2022)를 선정했다. 물론 〈애프터 미투〉는 이미 곳곳에서 많이 상영했고, OTT를 통해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각기 다른 형식으로 구성된 단편영화가 묶여 있어 한국 여성에게 가해진 다양한 폭력과 그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과, 한국과 홍콩의 사람들이 함께 한 공간에서 이 영화를 봤을 때, 또 다른 의미가 발생할 거란 생각에 선정하게 되었다. 단편영화로는 투쟁하는 여성의 신체를 담은 3편의 다큐멘터리를 선정하였다. 각 영화는 자신의 신체와 그 신체에 덧씌워진 규범과 싸우는 〈몸의 감각〉(안소정 연출, 2021), 계엄 이후 아스팔트 위에서 행진하는 사람들과 망상 사구의 갯메꽃, 호모초를 연결 짓는 〈미래 이후〉(권나민 연출, 2025), 미군기지로 사용되고 있는 오키나와에서 듀공과 기지반대 활동가들이 목격하는 서로의 모습을 담아내는 〈Okinawa Dugong〉(김아현 연출, 2025)은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의 투쟁을 이야기한다.

홍콩에서는 단편영화로는 〈My pen is blue,〉(SIU Chi-Yan 연출, 2023)와 〈Temporal (+) boundary〉(Vivian WONG 연출, 2021)를, 장편으로는 홍콩의 시위 관련된 영화를 선정했다. 〈My pen is blue,〉의 경우 홍콩 내에서 상영할 때 홍콩 영화신문기사관리국(OFNAA)에 의해 영화의 40%가 검열되어, 9분가량이 검정 이미지와 무음인 채로 상영되었다.3 이번 상영회에서는 검열 이전의 버전을 상영할 수 있었다. 〈Temporal (+) boundary〉는 홍콩이라는 도시를 떠나는 사람들과 그걸 지켜보며 홍콩에서의 삶, 도시에서의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였다. 장편영화는 2019년 홍콩 시위 당시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시위에 반응하는 여러 주체들을 담아낸 다큐멘터리였다. 감독들과 함께 대화하며 실제 시민들이 무엇을 경험했고, 무슨 생각을 하며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지, 창작 과정에서 마주하는 어려움들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자 했다.

각 영화들 모두 여성 감독이 창작했으며, 영화 제작 안팎으로 각기 다른 대상과 투쟁하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홍콩과 한국을 이야기할 때, “만약 한국의 계엄이 성공했다면, 한국은 지금의 홍콩과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계엄 이전에도 이후에도 우리가 싸워야 할 문제들은 계속 존재해 왔다. 예를 들어 여성의 몸이 늘 국가나 사회의 규범 속에서 통제되고 규정되는 것처럼, 억압은 특정 사건이 터졌을 때만 생기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는 듯 보이는 “사건 없음”의 상태가, 혹은 “사건 이후”의 상태가 사실은 끊임없는 억압과 싸움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홍콩과 한국이 단순히 계엄이나 시위라는 사건에 의해 과거와 미래로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져 있는 투쟁 속에서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누구에게 응답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해당 영화들을 상영하였다.

상영하며

첫날에는 한국에 온 홍콩 감독과 빈곤사회운동에서 활동하는 경희님이 모더레이터로서 홍콩 감독과 함께 홍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요청하는 각기 다른 연대의 상황들에 대해 발제하듯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둘째 날에는 평론가이자 영상이론과 선생님이신 신은실 선생님이 모더레이터로 참여했다. 〈애프터 미투〉의 감독들과는 현장에서, 홍콩에 있는 단편영화 감독들은 원격 화상통화로 참여하여 함께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OTT로 각자가 원하는 것을 보는 관람의 방식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한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함께 본 이후에 함께 이야기를 하는 이 시간이 좋았다. 나는 상영관 뒤편에 서서 모두와 홍콩을 목격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어떤 이야기들은 기존의 영화제에서 이야기되기를 기다릴 수 없겠다는 것을 실감했다. 지금 당장 논의되거나 목격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떤 영화들은 기존의 방식대로 유통/배급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영화를 보며, 인터넷으로 검색했을 때는 찾기 어려웠던 진짜 시민들의 얼굴, 목소리, 움직임을 듣고 볼 수 있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침묵 너머의 상황들을 마주하며, 실천으로서의 영화 보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보고, 이야기했을 때 침묵은 침묵으로만 남을 수 없게 된다.

상영 기획팀
나민

전 영화운동에 관심이 많아요. 영화는 말하려는 주제를 사람들이 사전에 알지 않았어도 함께 말할 수 있게 해줘요. 공통감각을 주는 거죠. 영화에 맥도날드든 내가 아는 티셔츠가 나오든 공유하고 있는 게 등장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차이든 유사성이든 자기 삶이랑 겹쳐서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를 본다는 건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삶에 진입할 수 있는 중요한 경로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아시아라는 조건 속에 있으니, 더더욱 식민주의나 제국주의적인 선전 수단으로 영화를 관람하기보다, 이러한 주입 속에서 어떻게 영화를 재건축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싶어요. 홍콩 시위에서 사람들이 책을 가져다 놓으면서 거리가 책방이 되거나, 예술적인 무언가를 하는 공간이 되는 건 도시공간의 성격을 바꾸는 일이에요. 각 움직임들이 또 다른 움직임을 만들면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것 같고요. 그래서 이러한 홍콩의 맥락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어요. 기존의 영화제 섹션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사회문제의 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고 그게 독립영화의 장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상영이 끝난 후, 홍콩 감독들에게 한국에 있을 때 한 번 더 상영을 하고 싶다고 연락을 받았다. 동아시아에 대해 지속적으로 글을 발행해 온 사회운동실천모임 플랫폼씨(Platform-C)와 상영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가 자막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더욱 수월하게 다른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상영회를 홍보하고 아카이빙하는 과정에서 여러 우려4하에 기존의 사진, 설명, 홍보 문구들을 많이 삭제했기에, 다시금 어떤 이야기들이 침묵으로 남게 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 신은실 모더레이터는 “자기 검열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지만, 지금 홍콩은 생존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그래야 반격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플랫폼씨에서의 상영에는 기획팀 나민이 함께하여, 훨씬 많은 관객들이 자신의 삶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나눴다는 후기를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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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via Wong, “Hong Kong’s Fresh Wave film festival hit by censorship”, 『Screendaily』, 2023.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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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우산운동 이후 홍콩 시민사회는 꾸준히 민주적 권리를 요구해 왔으나, 2020년 국가보안법 통과로 활동가·언론·정당이 대거 탄압당하며 정치적 공간이 급격히 축소되었다. 최근에는 거리 시위를 이어오던 마지막 주요 진보 정당인 사회민주연선(LSD)마저 강한 정치적 압력 속에 해산하면서, 조직적 반대 세력이 사실상 사라진 상태다. 법의 모호하고 광범위한 적용, 실제 기소·구금 사례, 금융·사회적 불이익, 강화된 감시 체계 때문에 시민들은 발언과 행동이 언제 범죄로 규정될지 알 수 없어 스스로 말을 아끼게 되며, 이런 자기검열은 개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은 상황이다.

교내 상영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또 다른 방식의 만남들을 상상해보게 되었다. 관객들이 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길게 나누어 주는 상영회, 각자가 자신의 삶을 기반으로 발화하며 같이 대화하는 주체로서 함께하는 상영회. 기존의 영화제와 다른 방식의 배급, 다른 방식의 상영 공간을 갖추고자 한다면, 관객과 함께하는 방식에 대한 상상력도 필요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아쉬움은 또 다른 시작을 만드는 법이니까. 우당탕탕 새로운 시도를 곳곳에서 계속해 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이번 상영은 여기서 마무리 해보겠다.

상영회를 열어서 관객을 만나는 것만큼, 이 상영회 기획에 함께하겠다거나 돕겠다는 사람들을 자꾸 만나게 되는 게 신기하고 이상했다. 이 사람들은 왜 기꺼이 함께하겠다고 말하고, 마이크를 건네주고, 바나나빵을 100개씩 굽고 야밤에 같이 자막을 만들까. 함께해준 이들 중에 조금씩 다른 언어를 가진 아현, 나민, 정현의 이야기를 곳곳에 옮겼다. 지면이 허락한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옮기고 싶다. 이 외에도 50여 명의 관객을 포함하여 상영회에 함께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글 안소정
다큐멘터리 영화와 조형예술을 공부하고 있다. 말하기가 시작되는 지점에 관심이 생겼다. 더 많은 것들에 응답하는 동료가 되고 싶다. 복숭아와 무화과를 열심히 먹으며 여름을 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