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여름의 끝자락, 공항의 소란을 막 지나온 임현진을 만났다. 비행기 결항 소동 끝에 기적처럼 도착한 서울에서, 여독을 풀 새도 없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캐나다 토론토의 서머웍스 페스티벌 현장에 있었던 그는 한국 작품 〈유령들의 대화〉의 초연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던 날들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출국 준비를 앞두고 있다. 여름은 항상 축제와 만남들로 채워져있다는 임현진의 시간을 들어본다.
지영 원래 여행을 좋아하시는지 궁금한데요. 다양한 지역을 오고 가실 때 PD님만의 리듬이 있으신가요?
현진 원래 여행을 좋아했어요. 제가 하고 있는 일이랑 잘 맞기도 하고요. 기관이나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독립 프로듀서로 활동을 하다 보니까, 성장에 갈증을 느낄 때가 많고 미래가 불안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이러다가 정체되면 어떡하지?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어떡하지?’하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새로운 도시에서 낯선 언어를 감각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몰랐던 이야기를 듣는 게 굉장한 공부가 되더라고요.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계속해서 여행을 다니고 새로운 걸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새로운 나라에 갈 때마다 언어를 조금씩 배워보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 나라의 언어로 소통하고 단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아요.
공연예술 독립 프로듀서 임현진의 자리
지영 공연예술 프로듀서라는 역할이 대중적으로는 낯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기획자, 프로덕션 매니저 등 비슷한 역할이나 이름이 있는데 프로듀서는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현진 저는 프로덕션 크레딧에서 기획 혹은 기획자라는 말을 잘 쓰진 않아요. 작업할 때 ‘기획님’ 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 말이 되게 이상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많은 경우 기획의 역할을 창작자들이 함께 나누어 시작하게 되죠. 기획의 범주 안에서 어떤 사람은 연출을, 어떤 사람은 프로듀서를, 누구는 디자이너를 맡는 것 같아요. 기획이라는 말이 가진 애매모호한 특징 때문에 프로듀서가 뭐 하는 사람인지 도리어 헷갈리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서 가능하면 기획이라는 말보다는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들을 찾으려 노력해요. 프로듀서로서 예술가와 작업하면서는 작업의 첫 번째 관객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예술가의 아이디어가 구현되는 데에 창작의 바깥에 제작의 관점에서 아이디어나 비전, 전략을 제시하기도 해요.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언어들을 함께 찾아내기도 하고요. 드라마터그가 작품 안에서 작품의 이야기들을 읽어내는 역할을 한다면, 프로듀서는 작품의 안팎을 오고 가면서 이걸 어떻게 전달할지를 엮어내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저는 매개하는 프로듀서 그리고 중매하는 프로듀서, 소개하고 발견하는 프로듀서이기를 더 선호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영 때로는 제작 현장에서 프로듀서의 자리가 ‘가장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위치에서만 보이는 풍경도 있을까요?
현진 프로듀서가 경계에 있는 사람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프로덕션과 프로덕션 바깥을 연결하다 보니까 필연적으로 팀 안에서 감정이나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 좋은 사람으로 있어야만 한다는 부담을 느낄 때도 있죠. 그런데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과 좋은 사람이 프로듀서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르기도 하더라고요. 때로는 냉정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먼저 봤을 때 얘기를 해줘야 하고. 그러면서도 안전하게 운영될 수 있게, 나를 위해서도 안전한 대화를 통해 프로젝트가 이어질 수 있어야 하니까요. 생각해 보니까 엄청난 일을 하는 사람이네요.
길을 바꾼 풍경들
지영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신 거로 알고 있어요. 공연 예술은 어떻게 보면 경영학과 정반대에 있는 자리 같기도 한데요. 길이 바뀐 순간은 언제인가요?
현진 사실은 경영학도 제법 좋아했던 것 같아요. 마케팅도 재미있었고 국제 재무도 잘 맞았고요. 시장에 대해 분석하는 것들이 꽤 재밌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졸업하던 즈음에 제법 큰 국제적인 컴퓨터 회사에 취직했어요. 그런데 회사의 고민과 내가 만들어내고 싶은 가치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해왔던 경험을 돌이켜 봤어요. 가장 즐거웠던 일은 고등학교 때부터 축제에서 자원활동가를 했던 경험이었어요. 과천에 오랫동안 살았었는데요. 동네에 오래된 공연예술 축제가 있었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까지 자원 활동을 하면서 축제에서 필요한 일을 능숙하게 해낼 수 있게 되고, 모두가 기뻐하는 순간을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경영학과 학부 여름 방학 때 유럽으로 리서치하러 갈 기회가 있었어요. 유럽 축제들이 공연예술을 콘텐츠로 거래하는 방식의 아트마켓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가설을 갖고 경영학과 학생으로 아트마켓에서 비즈니스 전략에 대해 배우고 공부하겠다. 이런 계획이었죠. 몇몇 축제들을 볼 수 있었고 그중 하나가 거리예술 축제였어요. 축제에서 봤던 풍경, 작품이 구현되고 있는 풍경들을 보면서 놀랐던 기억이 나요. ‘너무 아름답다! 이런 일을 만들다니 굉장한데? 이런 일을 나도 만들고 싶다!’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아요. 예술 쪽에서 일을 하고 싶은데 경영학과에서 공부한 이력 하나만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경로가 사실은 많지는 않았어요. 경영학을 이미 공부했으니 세부 분야로 예술이라는 콘텐츠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연극원 전문사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하게 됐어요.
국제 교류 현장의 감각
지영 〈국제교류협력〉 수업도 진행하고 계시는데 수업은 어떻게 꾸려가고 있으세요?
현진 처음 시작할 때는 〈국제교류협력〉을 주제로 15주 커리큘럼을 만들 수 있는 게 맞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강의안을 정리를 하면서 발견한 건 국제 교류와 연결해서 공부할 수 있는 요소들이 정말 많다는 거였어요. 국제 교류는 방법론을 배워서 수행하는 것이 목적이기보다는, 예술 경영인으로서,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국제 교류의 감각을 새로 배우고, 앞으로 어떤 관점과 안목으로 일을 지속해 나갈 건지를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강의와 일을 병행하다 보니까 현장에서 첨예한 논쟁의 주제나 질문을 마주할 때가 있어요. 일주일 동안 그걸 잘 생각해 뒀다가 수업하는 날 가져가서 “여러분! 이런 아젠다가 있는데, 이 주제로 오늘 토론합시다.”라고 해요. 각자 생각을 공유하면서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을 종종 가지곤 했는데 정말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지영 누구보다 국제교류의 현장에 가장 가깝게 닿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근래에 느끼셨던 국제교류의 특정한 흐름이나 논쟁점은 무엇인가요?
현진 모든 예술 콘텐츠를 ‘K-콘텐츠의 시대다!’라고 포장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어요. 산업 관점으로만 예술을 이야기할 때 도리어 예술이 성장할 가능성을 제약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에 K를 붙이고 K가 붙어 있는 것들이 마치 국위 선양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문화를 통한 외교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도 역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문화 외교는 단어에서 이미 한계점을 지니고 있어요. 외교는 국익을 위해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에 붙이게 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문화 외교로 예술을 치부하던 시기는 10년, 20년 전의 일이잖아요. 최근에 K-콘텐츠들을 언급하면서 홍보와 외교의 목적으로만 예술이라는 것을 다루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시장에서 판매 가치가 있는 것만 예술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전부로 보는 것은 아닌지 우려돼요. 예술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더 존중하고, 다양성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방식의 국제 교류가 많아져야 되겠죠.
국제 교류가 단순히 해외 유통으로서의 성과에만 집중하는 것보다 그 너머의 가치들을, 상호 호혜적인 가치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프로듀서여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공연 예술계의 희망은 독립 프로듀서, 독립적인 예술단체라고 생각해요. 정책은 자주 바뀌고 쉽게 줏대를 잃어버리고 극장이나 축제, 지원 사업은 있다가 사라지는데 독립 예술가, 독립 프로듀서, 민간 예술단체는 쉽게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늘 부침을 겪지만 사라지지 않고 하려는 바를 계속 이어가면서요. 그런 관점에서 독립 프로듀서들이 국제 교류 네트워크를 이어갈 수 있는 중요한 닻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영 그런 관점에서 기존 공연 구조나 유통 시스템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식을 실험했던 경험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현진 2023년에 수원연극축제에서 〈마피코〉라는 프로젝트 공연을 발표했었어요. 〈마피코〉는 말레이시아, 필리핀, 코리아의 줄임말인데요. 코로나 기간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의 연출가가 매달 온라인에서 진행한 연구 모임이 계기가 됐어요. 서로의 정치 상황을 이야기하고, 가짜 뉴스가 판치는 지금 시대를 연구하자는 논의를 거쳐 국제 협력 작품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죠. 코로나가 끝날 즈음 말레이시아에서 2주간 레지던시를 하면서 공동 창작을 진행했어요. “가짜 뉴스와 정치 상황을 이야기하기 위해 국가를 설립하자. 그 국가의 이름은 마피코다!” 선언하고, 관객들이 마피코 국가의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게 하는 일종의 포럼 연극을 만들게 됐어요. 작품을 만들면서 각 국가가 가진 정치적 쟁점, 근현대 역사적 배경을 담아내면서 서로의 이야기가 교차할 수 있게끔 했어요. 그 과정에서 텍스트만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아시아의 여러 정치적인 맥락처럼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의 이슈를 공부했어요. 이런 방식의 연극 만들기를 통해 방대한 미시사들이 흩어지지 않고 두껍게 읽히는 순간을 경험했죠.
이전에는 재정 마련과 초청이 용이한 서유럽 국가의 예술가들과 주로 국제 교류를 해왔어요. 그러다 문득 우리의 국제 교류가 기울어져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물리적으로 더 가까운 동남아시아 국가의 예술가들과는 교류할 기회가 많지 않았거든요. 〈마피코〉 작업을 하면서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의 예술가를 한국으로 초대해 그들의 맥락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되게 좋더라고요.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이렇게 소개되지 않았던 이야기들과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다리를 놓고 계기를 만드는 일들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 같고요.
질문으로 시작된 공성장을 위한 네트워크,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
지영 국제 교류의 방향이 바뀌면서 아시아 교류에 집중하게 된 계기로도 느껴져요.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Asian Producers’ Platform〉(이하 APP) 멤버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요, 올해에는 민간 펀드레이징으로 한국의 프로듀서들을 해외로 보내주는 프로젝트를 봤어요.
현진 APP는 2014년에 한국에서 첫 모임을 기점으로 시작됐어요.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 캠프〉라는 모임을 1년에 한 번 아시아의 도시에서 개최해요. 프로듀서들을 위한 일종의 레지던시, 리서치, 게더링, 네트워킹 프로그램인데요. 오랫동안 공연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서로 알고 지내던 한국, 대만, 일본, 호주의 프로듀서 동료들의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아시아 프로듀서들이 유럽의 네트워크나 플랫폼에서 마주치게 되는데 아시아 안에서 교류는 왜 이렇게 적지? 우리는 왜 서로를 잘 모르지? 아시아 안에서의 교류 지점들을 찾아보자, 더 만나보자, 서로로부터 배워보자. 이런 생각에서 시작됐죠. 한국의 경우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4년 동안 지원을 했고요. 일본과 호주, 대만에서도 마찬가지로 각국의 공공 기금을 받아서 운영했어요.
국제 교류의 장이라고 하면 대부분 작품을 사고파는 것에 목적을 두는 아트마켓을 떠올릴 것 같아요. 작품 쇼케이스를 하거나, 비즈니스 미팅을 하는 아트마켓이요. 기존의 국제 교류가 국가기관, 극장, 페스티벌을 중심으로 참가자들이 모여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에 대해 논의하는 협의체나 총회의 성격을 지닌다면, APP는 프로듀서로서의 개인에 더 관심을 가져요. 다른 국제 교류 자리가 비즈니스 파트너를 물색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면, APP는 프로듀서로서의 나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죠. 아시아 권역이 가진 특징을 리서치하고 토론하면서 프로듀서로서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내기도 하고요. 프로듀서의 역량에 집중한다는 점이 다른 국제 교류 네트워크와 다른 부분인 것 같아요. APP에서는 국적도 언어도 다르지만 말이 더 잘 통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 같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서로에게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APP에서는 돌봄과 기여를 보편적 가치로 인식해요. 같이 공성장하고 있다는 느낌. 혼자가 아니고 프로듀서로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그런 힘을 얻게 되는 데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죠.
경계를 잇는 돌봄의 콜렉티브 프로젝트 다리
지영 ‘프로젝트 다리’라는 단체도 이끌고 계시잖아요. 독립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프로젝트 다리를 설립한 과정도 궁금해요.
현진 프로젝트 다리는 독립 프로듀서들의 콜렉티브이고 사실은 컴퍼니라고 하기에는 비즈니스 모델이 있는 구조는 아니에요. 사업체라고 보기는 조금 어려운, 협업의 구조라고 보는 게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최근 10년은 독립 프로듀서로 일을 했어요. 독립 프로듀서는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탐색하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때로는 굉장히 외롭기도 하고 문제를 마주했을 때 막막하고 답을 찾기 어려울 때도 있어요. 몇 년 동안 일해오면서 노하우도 생겼고,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나 경험으로 해 나갈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생기고 나서 “독립 프로듀서로 산다는 게 굉장히 즐거운 일이야.”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 선배들을 더 만나고 싶었어요.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쩌면 내가 그런 사람이 돼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축제에서 프로듀서로 일할 때 자원활동가로 함께 일했고, 지금은 성장해 독립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 동료들이 생각났어요. 함께하면 일하는 방식이나 영역을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어떻게 보면 프로듀서 노조일 때도 있어요. 누가 부당한 일 당했을 때 같이 모여서 머리 싸매고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학습공동체기도 해요. 같이 성장하고 일을 지속해 나갈 힘을 얻게 되는 그런 곳이 프로젝트 다리입니다.
이어질 길, 건네는 말들
지영 앞으로 독립 프로듀서를 꿈꾸는 분들이나, 국제 교류를 희망하는 예술가, 기획자에게 나누어주고 싶은 이야기나, 지나온 시간에서 PD님께 힘이 된 말이 있으신가요?
현진 예술계 일이라는 게 한 사람이 유명해져서 잘나고자 해서는 잘 안되고, 같이 건강해야 계속 이어지더라고요. 이타적인 사람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이기적인 마음으로, 나도 여기에서 오래 일하려면 너도 행복해야 하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기보다 “괜찮을 거야. 여기서 일하는 건 되게 좋은 일이고, 계속 일해도 망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거야.” 이런 말을 하고 싶고 그 말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글 김지영
객석과 무대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 공연예술 주변인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가장 큰 행복은 최종 리허설을 볼 때라고 생각한다. 커뮤니티
극장, 극단, 민간 축제에서 기획자, 프로듀서, 매니저 등의 일을
해왔다. 연극원에서 극장경영을 공부하며, 공연예술을 둘러싼 시스템과
사회적 환경에 대한 관심을 연구로 발전시키고 싶은 바람이 있다.